요시히로 새구사 〈키문카무이〉

중앙일보

입력

대학생들이 산에 MT를 왔다. 그들은 늦은 저녁 모닥불을 피워놓고 무서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때 이상한 소리가 나면서 모두들 경악하며 놀란다.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보고 그리 놀란 것일까.

중학생인 료우. 그리고 친구인 유키오와 히로. 그들은 소꿉친구다. 북해도 은네호수로 낚시여행을 가기로 한 그들은 기차안에서 행선지를 바꾸게 된다. 예전에 함께 갔던 아기곰 쿠로와의 추억이 있는 흑토산으로 발결음을 옮긴다.

그들은 갑작스럽게 내린 비로 작은 산장에 들어가게 되고 거기서 사와다감독이 이끄는 방송국 일행을 만난다. 무언지 모르게 나를 감시하는 듯한 시선. 그리고 찟어진 베낭과 널부러진 물건들. 뭔지는 모르지만 섬뜩하고 두렵다.

밤사이 카메라맨이 사라지면서 그가 찍은 영상을 통해 그 막연한 두려움이 바로 '곰'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그리고 그들은 여기왔던 목적을 모두 버리고 살인곰을 피해 산아래로 내려가야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료우를 비롯한 방송국 일행들은 왔던 현수교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나 현수교는 끊어졌고 구조요청을 하러갔던 다카시는 곰에게 습격을 당한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살인 도주범 키쿠자와를 만나 상황은 더욱 나빠진다.
그들은 어떻게 곰을 피해 산을 내려갈까.

인간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인간이다

이 만화는 곰이 사람들을 해치는 것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 살인곰이 서서히 접근해오고 사람을 덮치는 장면은 그다지 자세히 묘사되고 있지 않다. 다만 상황에 따라 급변하는 사람들의 심리와 공포 그리고 비인간성을 세세하게 드러낸다.
일행들은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동료의 위험을 방관하고 자신이 살기위해 다친 이를 곰의 미끼로 내놓기를 당연시한다.

그리고 또 하나, 여기에서 주목할 점이 있다.
여기서 묘사되는 공포는 살인곰에 대한 공포라기 보다 위험에 처한 인간들의 인간들을 향한 공포다. 틀림없이 살인곰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실제 그들이 겪는 공포는 인간들에 의한 것이다. 그들이 쉽게 정복하려 했던 익숙치않은 '자연'이라는 거대한 장소와 곰이라는 매개물로 인해 인간은 바로 가장 큰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공존할 수 없는 울타리

곰들과 짐승들만의 세계였던 흑토산 깊은 숲. 이곳을 사람들이 접근하기 시작했다. 바로 자연만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이다. 곰과 짐승들은 단지 그 자리에 있었던것 뿐인데, 사람들은 곰이 나타났다고 말한다. 거기서부터 인간들이 꾸며놓은 모순덩어리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와 먹이로 인해 인간들에게 접근하게 되는 곰. 곰은 인간에게 악의없이 다가가지만 인간들은 접근하는 곰에게 위협을 가한다. 그리고 곰은 인간을 해친다. 바로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굴레다.

료우, 유키오와 히로도 같은 경험이 있다. 몇해전 만난 아기곰에게 인간의 먹이를 주고 이름도 쿠로라 붙였다. 결론적으로 그 살인곰이 예전의 쿠로는 아니었지만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곰은 또 누구에게 접근해 해를 끼칠지 모를 일이다. 지금의 살인곰도 과거의 누군가가 접근했었을테니 말이다.

비극의 계속된다

인간에게 피해를 한번 입은 이상 살인곰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장로라 불리는 사냥꾼은 말을 한다. 그리고 장로는 더 큰 피해가 생기기 전에 쿠로를 없애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쿠로는 총에 맞아 죽는다.

곰을 의미하는 아이누어 '키문카무이'. 이 말의 또 하나의 의미는 '산의 신'이라는 의미가 있음을 이 작품은 함께 밝히고 있다. 료우의 개 토오의 도움으로 무사히 숲을 빠져나오게 되는 일행들. 이렇듯 이 작품은 결말에 다다른다.

사건이 있은지 한달뒤 료우, 유키오, 히로는 다시 흑토산을 찾는다. 곰의 영역에 가지 않고 멀리서 쿠로의 새끼를 보는 그들. 그들은 곰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멀찍이 보고 간다.
이 마지막 장면은 안정되고 평화롭게 보이기 보다 가까운 미래에 다시 벌어질 사건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얼핏보면 〈키문카무이〉는 살인곰으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과 그 위험을 피해 구조되는 인간들의 투지를 담은 만화인 듯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인간에게 피해입은 자연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자연의 위대함 앞에 한순간 변해버리는 초라한 인간과 자연에 맞서던 그 인간이 스스로 파멸해 가는 과정을 그린 만화다.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인지라 자연의 영역을 점차 침입해가는 인간들에 대한 혐오가 느껴지기 보다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문명이라는 울타리가 어찌보면 얼마나 안전한가라는 안도감이 느껴진다. 물론 작가가 이런 것을 의도할리는 없겠지만 말이다.

대부분 어두운 톤의 그림에 시시각각 등장하는 위험요소들, 그리고 경악하는 사실적인 표정 연출, 숨가쁘게 넘어가는 스토리 등 〈키문카무이〉는 바로 한편의 영화같은 만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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