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vs 메드베데프 ‘비키니 걸 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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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을 위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를 지지하는 여성들이 모스크바국립대 앞 참새언덕(옛 레닌언덕)에서 국산 자동차 산업을 육성하자는 의미로 하이힐을 신고 비키니를 입은 채 세차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모스크바 AP=연합뉴스]

내년 대선을 앞두고 “푸틴을 위해 옷을 벗는다”는 ‘푸틴의 군대’와 “술 대신 우리를 택하라”고 외치는 ‘메드베데프 걸스’의 힘겨루기가 모스크바에서 한창이다. 블라디미르 푸틴(59·Vladimir Putin) 총리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46·Dmitry Medvedev) 대통령을 각각 지지하는 이들 그룹은 20대 초반의 여대생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푸틴과 메드베데프는 아직 내년 대선 출마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러시아의 차기 대통령은 바뀐 헌법에 따라 6년 임기를 연임할 수 있다. 푸틴은 2000년부터 8년 동안 4년 임기를 연임했으며 3선 금지에 따라 2008년 대선에는 출마하지 않았다.

 대학생 다이아나가 주도하는 푸틴의 군대는 지난달 “푸틴을 위해 벗겠다”는 동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올려 화제가 됐다. 그는 “푸틴의 지지자는 100만 명이 넘는다”며 “훌륭한 정치인이자 매력적인 남성인 푸틴을 다시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또 “푸틴의 군대는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젊은 여성들로 이뤄졌다”며 “(당신도) 푸틴에 대한 사랑을 보여줄 때가 됐다”고 덧붙였다. 푸틴의 군대는 최근 모스크바국립대학교 앞 참새언덕(옛 레닌언덕)에서 비키니 복장을 하고 세차를 해 주는 캠페인을 펼쳤다. 또 크렘린 인근 거리에 모여 푸틴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와 짧은 핫팬츠를 입고 지원자 모집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메드베데프 위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인터넷 모임에 속해 있는 여성들이 모스크바 중심지에서 젊은이들이 공공장소에서 술을 마시는 데 반대하며 비키니 차림으로 맥주가 들어 있는 양동이를 나르고 있다. [모스크바 AFP=연합뉴스]

 푸틴에 대한 젊은 여성들의 지지가 활발해지는 가운데 메드베데프 걸스는 술에 취한 러시아에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대학생 안나는 “맥주와 우리 중 무엇을 택할 것이냐”며 캠페인 참가자들이 맥주를 버릴 때마다 옷을 하나씩 벗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들은 금주문화 캠페인 영상을 제작해 도심 곳곳에서 맥주병을 들고 걸어 다니며 술 마시는 젊은이들, 공원에서 술에 취해 주정하는 사람들에게 “맥주를 버리라”고 했다. 모스크바 북쪽 베덴하 지역에서는 메드베데프 지지자들이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대통령 사진에 키스하라”며 대통령 얼굴을 붉은색으로 물들게 하는 캠페인도 벌였다.

 러시아 젊은층은 대선 주자들 간의 팽팽한 경쟁구도를 경험한 적이 없다. 소련 붕괴 후 러시아 대통령이 된 보리스 옐친이 푸틴을 후계자로 지명하고, 푸틴은 다시 자신의 심복이었던 메드베데프를 선택함에 따라 그동안 대선이 형식적으로 치러졌기 때문이다.

 ‘푸틴의 군대’와 ‘메드베데프 걸스’는 2012년 대선이 러시아의 12년 앞을 내다보고 선택해야 하는 중요한 선거라며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수퍼 푸틴’이란 제목으로 지구를 구하는 푸틴 만화가 러시아어·영어·중국어 등 5개 국어로 제공되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타르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총리는 조만간 대선 출마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반면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푸틴과의 경쟁구도를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지난달 이타르타스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대선은 공정하게 치러져야 한다” 고 밝힌 바 있다.

임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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