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6일 편지]개그는 눈물이다.TV는 허상이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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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모두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들뜬 분위기로 공항에서 만났다. 하나하나 소품과 식량을 점검하고 짐을 부치러 갔다. 소품가방 중에 2개의 케리어는 식량(라면·김치·김·된장·고추장 등)이었고, 나머지 5개는 소품이었다. 소품을 챙기면서 걱정된 것은 칼모양의 저글링 도구였다. 외국을 나갈 때 항상 걸렸었다. 그런데 이번엔 아무일 없이 그냥 통과됐다. '잘 풀리려나?' 내심 기분이 좋았다.

경선이가 다리가 다쳐서인지 출국심사도 아주 빨리 진행됐다. 그 덕분에 일행인 우리도 일사천리로 출국심사를 받을 수 있었다. 경선이는 외발자전거 연습을 하다 다쳐 다리에 깁스를 한 상태였다. 인대가 끊어졌는데도 "한국 개그의 눈물을 알려야 한다"는 그와 함께 했던 터였다. 그렇다. 개그는 눈물이다. 웃고 즐기며 다들 스타가 될 때 경선이는 눈물로 자신의 끊긴 다리를 감고 영국행을 결심했다. 걸은 순 있지만 무리를 하면 본 공연에 차질이 생길 것 같아 걱정됐다. 다행히 항공사에서 휠체어를 빌려줘 수월하게 이동을 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 비행기가 1시간이나 지연출발… 이 때부터 왠지 불안했다. 이심전심일까, 서로들 말을 하면서 불안해했다. 인천에서 파리로, 다시 파리에서 에딘버러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한다. 파리에서 에딘버러행 비행기를 타야하는 시간은 파리 도착 이후 2시간의 여유밖에 없었다. 그런데 파리행 비행기가 지연출발하면서 1시간을 고스란히 허비하게 됐다. 촉박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비행기가 출발할 때쯤 인천공항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11시간이라는 긴 비행 뒤 파리에 도착했을 때 인천에서의 불안한 생각들이 맞아들어가고 있었다. 오후 8시25분에 파리에서 에든버러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하는데 우리가 파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7시40분이었다. 너무 촉박했다. 경선이가 다리가 불편해서 내리는 것도 더뎠다. 파리공항에서의 입국심사마저 굉장히 느리게 진행됐다. 방법이 없었다. '나홀로 집에'라는 영화처럼 우리들은 전속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못 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일정이 꼬이게 된다. 서로 안되는 영어를 쓰면서 앞만 보고 달렸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에든버러행 비행기에 올랐다. 기내에 한국사람은 우리 뿐이었다.

그런데 이게 또 무슨 일인가? 에든버러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찾으려는데 우리 짐이 없었다. 파리에서 짐을 안 고 왔다는 항공사 직원의 황당한 말이 이어졌다. 촉박하게 와서 사람만 싣고 짐은 파리에 두고 왔다는 것이다. 날벼락이었다. 직원은 "내일 파리에서 짐이 오면 숙소로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그래도 우리는 불안했다. 어느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절대로 안되는 소품이기 때문이다. 단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안 되기에 솔직히 공항에 내리자마자 기쁜 마음보단 불안하고 짜증이 났다. 그래도 일단은 숙소로 가서 각자 개인짐을 풀고 대책을 논의하기로 했다.

공항버스를 타고 숙소에서 두 정거장 정도 떨어진 곳에 내려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우리가 공연할 극장을 볼 심산이었다. 극장 앞에 서서 감회에 젖어있는데 우연히 우리가 에든버러에 오기 전부터 메일을 주고 받았던 '헤더'라는 친구를 만났다. 그는 우리 공연을 높게 평가하고 극장을 알려주는 등 도움을 준 친구였다. 이런 저런 얘기로 반가움을 전했다.

오후 10시30분쯤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에 들어와서 기분이 조금 풀어졌다.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더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침대에서 다 잘 수 없었다. 2명은 쇼파와 바닥에서 자야 했다. 비록 모두 침대에서 잘 순 없었지만 없는 살림에 이것도 호사라는 생각을 하며 짐을 풀었다. 다들 머리 속엔 소품 짐이 하나도 안 빠지고 내일 잘 도착했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마지막으로 개인 짐을 정리하고 라면을 꺼내 늦은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런던에서의 첫 날을 베갯잇에 묻었다. 내일을 기약하며….

글·옹알스 최기섭, 정리·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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