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평생교육원 ‘책과 함께 1박2일’ 프로그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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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주제로 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열린 충남평생교육원 앞마당에서 가족들이 독서삼매경에 빠졌다. [조영회 기자]

가족 무료 캠프 … 이보다 좋을 순 없다

본격적인 피서철이 돌아왔다. 여름휴가를 계획하는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일이지만 휴가비용에 대한 부담도 감안해야 한다. 그렇다고 1년에 한 번 찾아오는 휴가를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추억 만들기에 나서는 가족도 있지만 온 식구가 모여 하룻밤을 책과 함께 보내는 의미 있는 여행도 있다. 텐트치고 영화보고 식사하는데 드는 비용이 모두 공짜다.

 돈 한푼 들이지 않고 동네 공공기관에서 가족들이 게임을 즐기고 텐트 안에서 못다한 대화도 나누고 책을 읽는 등 특별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열렸다.

 지난 주말 충남평생교육원이 올 들어 처음으로 15가족(60명)에게 도서관을 개방했다. 선착순으로 모집했는데 접수 하루 만에 마감됐다. 휴가철, 여름방학에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캠프인데 예상 보다 주민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영화 보고 게임하고 … 책 읽으며 꿈 키우고

22일 오후 충남평생교육원 건물 앞마당. 바닷가나 계곡에 있을 법한 텐트 15동이 잔디밭에 둥지를 틀었다. 텐트마다 삼삼오오 모여 집을 짓는 가족들의 얼굴에선 웃음꽃이 피어났다. 한쪽에선 뼈대가 잡히지 않아 진땀 빼는 가장들을 보다 못한 엄마들이 ‘수퍼우먼’ 기질을 발휘했다. “이것도 제대로 못하고 아빠가 아이들과 여행을 자주 가 봤어야지…” 협동심에 ‘삐뚤 빼뚤’ 텐트가 조금씩 탱탱한 모습으로 제자리를 잡았다.

 간단한 입소식을 시작으로 ‘책과 함께 꿈을 키우는 1박 2일 캠프’가 진행됐다. 첫 프로그램은 ‘가족독서탐험대’. 꿈 이야기를 담은 『인디언붓꽃의 전설』을 인디언음악과 함께 감상해 보는 시간이다.

 다른 아이보다 몸집이 작은 아이. 친구들처럼 활 쏘며 사냥을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아이의 별명은 ‘작은 다람쥐’. 하지만 그림 그리는 재주를 가진 아이. 꿈속 광경을 그리지 못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원하던 노을 빛을 그렸고 사람들은 ‘노을을 땅에 물들인 사나이’란 새 이름을 부르며 그를 기렸다는 이야기다.

 구슬픈 피리 소리를 배경음악으로 동화 속 이야기를 펼쳐가는 동화구연가 전진영씨 입담에 아이와 부모들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둘러 앉았다. “어떠셨나요? 작은 다람쥐도 그만 두고 싶었던 적이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그렸지요. 꿈을 이루기 위해 우리들도 그래야겠지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이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어 아이들은 꿈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담은 『씨앗은 무엇이 되고 싶을까』 책을 읽으며 자신이 생각하는 미래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공동체 놀이로 가족애 확인

게임으로 가족사랑을 확인해 보는 자리도 마련됐다. ‘빈방 있어요’ 게임은 서로 모르는 가족과 눈을 마주치며 친해지는 계기가 됐다. 한 사람이 눈을 가리고 상대방이 지시하는 대로 따르는 ‘비행기와 관제탑’은 시각장애인을 이해하는 배려심을 기를 수 있었다.

 물총으로 씨앗을 터트리는 ‘물총놀이’는 아이들에게 단연 인기 최고였다. 어른과 아이가 뒤엉켜 물총으로 씨앗을 터뜨리고 안에 담긴 캡슐에 자신의 꿈을 적어 간직하는 의미 있는 행사다.

 두 자녀를 둔 이명련씨는 “태어났을 땐 건강하게 자라기만 해도 감사했는데 차츰 성적에 욕심을 부리는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며 “앞으로 아이가 행복한 나무로 자라기 위해 무엇을 해줘야 할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손재현(아산 배방초 2년)군은 “가족이 모두 책을 읽고 게임도 하며 즐겁게 웃을 수 있어 좋았다”면서 “비행기 게임 땐 앞을 볼 수 있다는 점에 감사했고, 꿈이 적힌 씨앗이 나왔을 땐 그 꿈을 이룰 때까지 간직하겠다고 다짐했다”고 웃음지었다.

아빠의 존재감 알게 된 아이들

황창구(35)·금미경(32)씨 부부는 예은(9)이와 민혁(7)이에 대한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덜었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아빠의 주·야간 3교대 근무. 집에 오면 늘 피곤해 아이들과 놀아주지 못했다. 근무 여건상 야간에 일할 땐 일주일간 아이들을 못 볼 때도 있었다. 쉬는 날엔 아이들이 학교와 유치원에 있어 함께 할 수 없었다. 엄마가 함께 했지만 아빠의 빈 자리는 채우지 못했다. 하지만 황씨는 이번 기회를 통해 아이들과 더욱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다. 아빠를 늘 원했던 아이들도 이날 만은 마음껏 소리지르며 아빠 품속으로 달려들었다. 늦은 시간까지 도서관에서 동화책을 읽으며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겼다.

 김진호(38)·남현주(38) 부부 역시 아들 민석(11)이와 텐트 안에서 책 이야기를 하며 잠이 들었다. 남편은 장애의 한계를 뛰어 넘어 행복한 삶을 사는 『닉 부이치치의 허그』, 아내는 해남 땅끝에서 민통선까지 도보로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아들은 할머니의 손주 사랑 이야기를 담은 『송아지 내기』를 읽었다.

 행사에 참여한 이석열(48)씨는 “아이들을 위한 특성화된 캠프는 많지만 책을 주제로 가족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은 처음”이라며 “피서지를 다니는 즐거움 못지 않게 많은 것을 얻었다”고 말했다.

글=강태우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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