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납품 땐 40일 안에 돈 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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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해 8월 말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이사철 의원에게 한 의류납품업자가 찾아왔다. 그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유통업체인 A사가 옷을 주문해 놓곤 갑자기 납품을 못 받겠다고 해 큰 손해를 입게 생겼다”고 하소연했다. 당시 A사는 납품업체와 정식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작업지시서’로 물건을 주문한 뒤 발을 빼버렸다. A사의 간부는 이 점을 믿은 듯 “납품을 안 받아도 우리에겐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 의원이 “옷에 아무런 하자가 없는데도 왜 트집을 잡느냐. 공정거래위원회에 알리고 국회 국정감사에서 문제 삼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나서야 납품이 이뤄졌다. 이후 이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이 ‘대규모소매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6월 10일 이 의원 대표발의)이다.

 한나라당 이주영 정책위의장과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26일 이 의원이 내놓은 법안을 포함한 ‘중소·영세업자 보호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 의원의 법안에 따르면 매출액이 1000억원 이상이거나 매장 면적이 3000㎡ 이상인 점포를 영업에 사용하는 백화점·대형마트·TV홈쇼핑·인터넷쇼핑몰 등 ‘대규모 소매업자’ 63곳은 납품받은 상품의 대금을 정당한 이유 없이 감액하거나 반품해서는 안 된다. 상품판매대금도 월 판매마감일로부터 40일 이내에 지급해야 한다. 유통업체가 납품업체에 상품권 구입, 경영 정보, 경제적 이익 제공을 요구해서도 안 된다. 이를 어기면 2년 이하 징역이나 1억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도록 했다. 당정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공정거래위 관계자는 “국내 대형 백화점 상위 3사의 시장점유율은 2001년 61%에서 2009년 81%로, 대형마트의 점유율은 2002년 52%에서 2009년 80%로 증가했다”며 “유통업계의 독과점화로 인해 납품업체와의 관계에 있어 불공정한 사례가 많이 발생해 대책을 내놓게 됐다”고 말했다. 김성식 정책위 부의장은 “중소 사업자들이 ‘갑을(甲乙) 관계’에서 약자(을)가 돼 끌려다니면서 피해를 보고 있다”며 “이 의원이 제출한 법안을 8월 국회에서 처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민주당 손학규 대표도 최근 라디오 연설 등에서 “대기업은 납품단가 후려치기, 하도급 불공정거래 등에 대해 입장을 떳떳이 밝혀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었다.

 당정은 또 ▶대형 프랜차이즈 가맹본부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현장조사를 실시해 법 위반 시 엄중 제재해 가맹점을 보호하고 ▶장례업체와 상조 상품을 해약할 때 돌려받는 돈을 81%에서 85%로 늘리며 ▶소비자들이 환불할 때 피해를 보는 일이 잦은 분야로 꼽히는 헬스클럽·결혼중개·학습지·인터넷교육·미용업 등에 대한 모니터링을 한국소비자원과 함께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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