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해리의 모든 것’ 사이트 제작 … 마법 대신 경영 펼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2면

조앤 롤링(왼쪽 둘째)이 지난 7일 영국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서 열린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2부’ 시사회에 참석해 주연 배우들과 함께했다. [런던 AP=연합뉴스]

14년간 세계를 마법으로 홀린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가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최근 ‘해리포터’ 영화 시리즈 최종편인 ‘죽음의 성물 2’가 세계적으로 개봉되면서 1997년 소설 첫 출간 이후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1편 ‘마법사의 돌’부터 마지막 편 ‘죽음의 성물’까지 총 7권의 책과 이를 원작으로 한 8편의 영화로 제작됐다.

 사실 ‘해리포터’ 소설의 마지막 편인 7편 ‘죽음의 성물’은 4년 전 출간됐지만 ‘해리포터’ 성공의 양 날개 중 하나인 영화가 이어지고 있어 신화는 계속됐다. 하지만 최근 영화 완결편이 공개되면서 이젠 진짜 해리포터 신화의 끝이 보이고 있다.

 해리포터가 떠난 빈자리를 누구보다 크게 느낄 사람은 ‘해리포터’를 낳은 조앤 롤링(46)이다. 원작자 롤링은 지금까지 해리포터 책을 4억5000만 권 이상 팔았다. 67개국 언어로 번역돼 ‘성서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 됐다. 무일푼 싱글맘이었던 롤링이 그렇게 모은 재산은 5억3000만 파운드(약 9000억원)에 달한다. 이제 언론은 ‘해리 이후’ 롤링의 행보에 관심을 쏟고 있다.

 마법사 해리포터의 모험은 끝났지만, 작가 조앤 롤링의 모험은 끝나지 않았다. 롤링은 해리포터를 앞세운 브랜드 경영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는 지난달 영국 런던에서 해리포터 웹사이트의 출범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오는 10월 문을 여는 ‘포터모어(Pottermore)’라는 웹사이트는 ‘해리포터’ 오디오북과 전자책을 배포하고, 팬들을 위한 인터랙티브 서비스를 할 계획이다. 책에서 다 쓰지 못한 뒷이야기와 소설 속 캐릭터와 장소, 소품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도 풀어놓는다. 롤링은 기자회견에서 “새 소설을 쓸 계획은 없다”며 “독자들에게 풀어놓을 해리포터 뒷이야기가 수만 자가 넘는다”고 밝혔다. 그는 “처음엔 ‘마술 지팡이의 나무가 무슨 소재일지 누가 궁금해 할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해리에 관한 모든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롤링의 계획은 책에 이어 영화 시리즈까지 모두 끝나자 이번에는 온라인에서 새로운 수익원을 찾으려는 시도다. 전자책을 아마존이나 애플 같은 온라인 콘텐트 시장을 통하지 않고 직접 배포하는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영미 출판계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해리포터를 본격적인 브랜드로 개발하는, 매우 정교하게 짠 비즈니스 계획”이라고 논평했다. 그간 영화가 개봉되면 책 판매가 덩달아 올라갔는데, 더 이상 책 판매를 도와줄 영화가 없게 되자 롤링이 팬들을 사로잡을 뭔가를 필요로 했다는 것이다.

 롤링의 비즈니스 감각은 해리포터 시리즈를 출간하고 개봉하면서 차츰 쌓여갔다. 영화 ‘해리포터’는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7편이 만들어져 흥행수입 63억4000만 달러(약 6조7000억원)를 거뒀다. 최근 개봉한 마지막 편 ‘죽음의 성물 2’까지 더하면 70억 달러(약 7조 원)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역대 할리우드 프랜차이즈 영화 중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작품이다.

 그가 처음부터 단맛을 본 건 아니다. 1995년 ‘해리포터’ 원고를 들고 출판사 12곳을 전전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아이를 유모차에 재우고 카페에 앉아 쓴 원고였다. 딸 하나를 둔 서른 살 이혼녀 롤링이 더운 물조차 나오지 않는 허름한 아파트에서 정부 보조금으로 근근이 살 때였다. 가는 곳마다 퇴짜를 맞다 13번째 찾아간 출판사에서 책으로 펴내면서 그의 인생은 마법처럼 역전됐다.

 그는 2004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하는 ‘세계 최고 부자’ 명단에 처음 이름을 올렸다. 소설 출간 7년 만에 ‘거지에서 거부로’ 거듭난 그의 성공 스토리가 시작됐다. 가장 최근인 올 3월 포브스가 발표한 ‘세계 억만장자’ 명단에 따르면 롤링의 재산은 10억 달러(약 1조546억원)로 추산된다.

 롤링 소설의 첫 독자는 두 살 어린 여동생이었다. 롤링은 어린 동생에게 자기가 지어낸 이야기를 들려주며 소설계에 입문했다. “첫 창작 소설은 다섯 살인가 여섯 살 때쯤 쓴 토끼 이야기예요.”

 그는 엑시터대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런던사무소에서 자료조사원 겸 비서로 근무했다. 이후 포르투갈로 건너가 영어를 가르쳤고, 그곳에서 방송기자인 첫 남편을 만났다. 1년간의 짧은 결혼생활의 결실은 딸이었다. 싱글맘이 되어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우울증에 시달려 자살까지 생각한 적도 있다. 롤링은 훗날 인터뷰에서 “대학 졸업 후 7년이 지난 시점에 내 인생은 완전한 실패였다”고 회고했다. 실패한 결혼, 무직, 먹여 키워야 할 딸…. 하지만 그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 결과 세계적인 스타 작가가 됐다.

 “실패는 불필요한 걸 없애준다. 나는 내게 가장 중요한 작업을 마치는 데 온 힘을 쏟아부었다. 내가 만약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면 내가 진정 하고 싶었던 일에서 성공하겠다는 결심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살아 있었고, 사랑하는 딸이 있었고, 오래된 타자기가 있었으며, 크나큰 아이디어가 있었다. 그런 견고한 바탕 위에서 나는 인생을 재건하기 시작했다.” (2008년 하버드대 연설 중에서)

박현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