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정치인 강남 좌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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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정치인은 강남 좌파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20일 펴낸 『강남 좌파』(인물과사상사)에서 한 말이다. 올 초부터 우리 사회 진보 진영 일각에서 새롭게 불기 시작한 ‘강남 좌파’ 현상을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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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와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가 함께 펴낸 『진보집권 플랜』이 바람의 진원지였다. 조 교수와 오 대표의 ‘강남 좌파’가 진보 성향에 주로 국한됐다면, 강 교수는 정치권 일반의 특징으로 확대 해석했다.

 ‘강남’은 중상류층을 비유하는 상징어다. 꼭 강남에 살지 않아도 ‘강남 좌파’로 분류될 수 있다는 의미다. 어디에 살건 소득 수준과 생활방식이 중상류층에 속하거나 그에 가까우면서 말과 생각은 좌파적으로 하는 이를 가리키는 신조어가 ‘강남 좌파’다. 강 교수는 이를 어느 나라에서나 발견되는 현대정치의 특징으로 보면서, 한국의 경우엔 민주화 이후 두드러졌다고 분석했다.

강준만

 민주당뿐 아니라 한나라당 소속 정치인까지 ‘강남 좌파’로 분류됐다. 정치인은 대개 학벌과 소득 규모로 볼 때 중상류층에 속하고, 동시에 선거에 당선되려면 대다수 서민의 표를 얻어야 하므로 겉으로라도 ‘친(親)서민 정치’를 표방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

강남 좌파는 엘리트 중심 정치의 한 형태라는 게 강 교수의 시각이다. 좌파나 우파의 이념으로 볼 것이 아니라 ‘엘리트 vs 비(非)엘리트’의 구도로 강남 좌파 현상을 볼 것을 제안했다.

 강 교수는 박근혜·손학규·유시민·문재인·오세훈 등 잠재적 대권후보에 대한 인물 비평도 실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침묵 정치’가 인기를 끄는 배후엔 ‘강남 좌파’에 대한 국민의 실망이 자리 잡고 있다고 봤다. 민주화 이후 좌파와 우파 정권이 교체되는 가운데 드러난 정치 엘리트의 위선에 국민이 염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강남 우파이면서도 강남 좌파적 언어를 사용하며, 반(反)포퓰리즘적 언어를 전투적으로 밀어붙이는 일종의 ‘브랜드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규정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좌파에서 우파를 거쳐 다시 ‘분당 좌파’로 재기에 성공한 예외적인 사례인데, 여기엔 한국의 선거를 지배하는 철칙인 ‘반감과 반작용’이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손학규가 보여준 ‘분당 좌파’의 성공 뒤엔 ‘강남 우파’ 정권에 대한 반감이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의 경우는 노무현 정권에 덧씌운 부정적 의미의 ‘강남 좌파’ 이미지를 벗기고 일종의 명예회복을 하기 위해 분투하는 상황이라고 파악했다.

 강남 좌파엔 명암(明暗)이 공존한다. 강 교수는 “상류층 사람이 진보적 가치를 역설하는 건 하층계급에게 큰 힘이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 했다. “갈등의 양극화를 막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상류층에 속하면서도 하층계급을 생각하는 마음이 고마운데, 이런 걸 위선이라고 본다면, 세상에 위선 아닌 것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부정적인 면도 지적했다. “더 많은 권력·금력을 얻는 수단으로 진보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위선적일 수 있다고 했다. 하층 계급의 절박함을 모르기 때문에 제스처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 중 ‘기회주의적 강남 좌파’를 경계했다. 좌파 성향이 없으면서도 개인적 이익을 위해 좌파 성향을 드러내는 행태를 비판한 것이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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