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한진중공업 사태 일감 만들기가 해결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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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승기
경제부문 기자

20일 찾은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는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담장 위에는 쇠철조망이 둘러쳐져 있고 조선소로 들어가는 3개의 입구는 모두 봉쇄됐다. 건물 유리창은 깨져 있으며 일부는 임시로 비닐을 쳐놓은 상태다. 그 위로는 날 선 ‘퇴거명령서’와 ‘경고문’이 여러 장 붙어 있었다. 계속되는 노사 대립과 조선경기 침체로 영도조선소는 활력을 잃었다. 오후 6시쯤 업무를 마치고 나오는 근로자들의 표정은 사뭇 어두웠다.

 “내려와서 대화로 풀자.” “정리해고 철회가 먼저다.”

 이날 허남식 부산시장은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를 찾아 크레인에서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전화통화를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가로막은 높은 벽만 확인했을 뿐이었다. 허 시장이 오기 전에도 정치권 인사들이 영도조선소에 앞다투어 들렀지만 변한 건 없었다.

 회사는 경영상 이유로 지난해 12월 생산직 직원 400명을 정리해고했다. 조선경기 침체로 일감이 줄고 가격 경쟁력도 중국에 밀려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물론 영도조선소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보였다. 부지만 해도 26만4462㎡(8만 평)에 불과하다. 걸어서 30분이면 한 바퀴를 다 둘러볼 정도였다. 현대중공업(826만4462㎡·250만 평)의 경우 차를 타지 않으면 다 둘러보지 못한다. 그만큼 차이가 크다. 도크 길이도 230m에 불과해 10만t 이상 되는 큰 배를 지을 수 없어 수지를 맞추지 못한다. 그나마도 3개의 도크 중 한 곳은 물만 들어차 있었고 다른 한 곳은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100% 한진중공업의 자회사인 필리핀 수비크조선소를 보자. 이곳은 이익을 내고 있다. 3년 이상의 물량도 확보했다. 그러다 보니 현지 고용 인원도 상당히 많다. 영도와 수비크의 비교는 우리 근로자들을 허탈하게 만든다. 회사 관계자는 “우리는 다행히 유동성 부족은 아니고 일감 부족”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상황이 좋아질 여지가 남아 있다는 얘기다. 마침 영도조선소는 최근 6척의 신규 선박을 수주했다. 이르면 6개월 안에 건조작업이 시작된다. 이번 신규 수주처럼 회사가 뛰면 된다. 회사가 근로자를 위한 자구 노력을 최대한 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면 씨줄, 날줄로 엮인 이번 사태의 해법이 나올 것이다.

채승기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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