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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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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둥지를 잃은 집시에게는/찾아오는 밤이 두렵다/타인이 보는 석양의 아름다움도/집시에게는 두려움의 그림자일 뿐/<중략(中略)>/깡소주를 벗 삼아 물마시듯 벌컥대고/수치심 잃어버린 육신을/아무 데나 눕힌다’. 서울의 한 노숙인 쉼터 벽에 남아 있는 어느 노숙인 시의 일부다. 잘 곳 없는 절망감과 안타까움이 절절하다. 노숙인 없는 세상을 꿈꾸며 썼지 싶다.

 생존의 설움 중에 배고픔이 가장 아프고, 그 다음이 집이 없는 거다. 노숙인(露宿人)은 말 그대로 집이 없어 이슬을 맞으며 한뎃잠을 자는 사람이다. 중국 남송의 시인 범성대(范成大)는 원일(元日)이란 시에서 ‘풍찬노숙반생치(風餐露宿半生痴)’라고 했다. 바람을 맞으며 밥을 먹고 이슬을 맞으며 잠을 잔 지 반평생에 바보가 됐다는 뜻이다. 그만큼 힘겹고 고통스럽다는 의미일 터다.

 우리나라 노숙인·부랑인은 정부 공식 집계로도 지난해 기준 1만3000명이 넘는다. IMF와 세계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신용불량, 실직, 가족 해체 같은 현상이 심화된 탓이다.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문제인 셈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가 보는 노숙인의 이미지는 극히 부정적이다. 나태·무기력자에 혐오감 유발자이고, 잠재적 질환자·범죄자다. ‘사회 쓰레기’로 여긴다는 얘기다.

 이러니 노숙인은 사회적 단속과 배제 대상이다. 88 서울올림픽 때나 2005년 부산 APEC회의 때 노숙인을 마치 보여서는 안 되는 치부처럼 감추기에 급급하지 않았던가. APEC 당시 부산시 노숙인 관리대책엔 시설 입소를 거부하는 노숙인을 경찰 협조를 얻어 경범죄로 처벌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을 정도다. 노숙인을 범죄자로 다룬 것이나 매한가지다.

 전국실직노숙자대책 종교시민단체협의회가 2000년 공표한 ‘노숙인 권리선언문’ 첫 줄은 이렇다. ‘더 이상 노숙인이 이 사회에서 실체가 없는 존재로서 통제나 격리의 대상으로 살아가는 것에 반대하며, 노숙인도 이 사회의 동등한 시민임을 선언한다’. 어쩔 수 없이 처해진 길 위의 삶이지만 모두의 가족, 친구, 이웃이고 싶다는 염원이다.

 코레일이 8월부터 서울역 내에 있는 노숙인들을 모두 역사 밖으로 쫓아내기로 했다. 고객 불편 해소와 이미지 제고를 위해서란다. 이런 임시방편으로 노숙인 문제가 해결될 리 만무하다. 무작정 내몰 게 아니라 긍정적으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자활 대책 마련이 먼저다. 그곳을 벗어나길 가장 바라는 건 바로 노숙인 자신들이 아니겠나.

김남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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