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위기 때 환차손, 수출 늘어 상쇄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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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정유·철강 업체 등 원자재 수입을 많이 하는 기업들은 2008년 금융위기 때처럼 원화 값이 크게 떨어지면 막대한 환차손을 본다. 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들 기업의 수출이 늘면서 늘어난 이익이 환차손을 충분히 메울 수 있는 규모라는 것이다. 이들 업체가 원화 가치 하락에 대비한 적극적인 조치를 잘 취하지 않는 이유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김우찬 교수는 19일 ‘환율상승에 따른 환차손 증가는 수출 호조에 따른 영업이익 증가에 의해 상계되는가’란 보고서에서 이 같은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보고서에서 김 교수는 S-오일과 SK에너지, 포스코, 현대제철을 사례로 분석했다. 이들 네 기업은 원화 값 하락으로 환차손이 증가할 때 매출총이익(매출액에서 매출원가를 뺀 금액) 역시 늘었다. 2008년 SK에너지의 환차손은 약 1조원 증가했지만, 매출총이익 증가분은 이를 크게 넘어서는 2조원에 달했다. 같은 해 포스코도 환차손 증가분은 약 7000억원이었지만 매출총이익 증가분은 2조3000억원에 달했다.

 이는 이들 기업이 원자재를 수입해 생산한 제품의 상당량을 수출하기 때문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원화 값이 하락하면 원화로 표시한 원유와 철광석 등 원자재 수입 비용이 치솟아 환차손이 생긴다. 하지만 동시에 달러화로 표시된 가격 경쟁력이 올라가 수출이 늘고, 원화표시 수출액도 커져 영업수지가 좋아진다는 설명이다.

2008~2009년 외화 유동성 위기를 불러 온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게 조선업체 등 수출업체의 대규모 선물환 매도다. 이런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원자재 수입 기업에 선물환 매입을 독려하는 정책이 시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환차손과 영업이익 간의 상관관계상 그 같은 정책을 써봐야 잘 먹히지 않을 것이란 게 김 교수의 분석이다. 김 교수는 “선물환 매입을 독려하려면 환차손이 영업이익 증가로 상쇄되지 않는 항공업체 등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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