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다스려 통한 클라크·미켈슨 … 고집 부리다 망한 도널드· 웨스트우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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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런 클라크가 제140회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확정한 뒤 18번 홀 그린에서 환호하고 있다. 그는 타이거 우즈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첫 번째 메이저 우승 때 중압감을 어떻게 극복했느냐’고 물어보았다”고 말했다. [샌드위치(잉글랜드) AP=연합뉴스]


“그곳은 기껏해야 평범한 코스다.”

 남자골프 세계 랭킹 16위이자 ‘패셔니스타’로 유명한 잉글랜드의 이언 폴터(35)는 제140회 디 오픈 챔피언십(브리티시오픈)에 앞서 트위터에 이렇게 호기를 부렸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본선 진출자 명단에 없었다. 폴터뿐 아니다.

 세계 랭킹 1, 2위인 루크 도널드(34)와 리 웨스트우드(38·이상 잉글랜드)도 2라운드가 끝나자 집으로 돌아갔다. 한 차례 이상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한 경험이 있는 파드레이그 해링턴(40·아일랜드)과 그레이엄 맥도웰(32·북아일랜드), 어니 엘스(42·남아공) 등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대런 클라크(43·북아일랜드)가 은빛 주전자 ‘클라레 저그’에 입맞춤하는 장면을 TV로 지켜봤다.

 넘버원 자리를 다투는 도널드와 웨스트우드는 18일(한국시간) 잉글랜드 샌드위치의 로열 세인트 조지스 골프장(파70)에서 끝난 디 오픈에서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지 못했다. 이들은 “잉글랜드에서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변화무쌍한 날씨에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는 잭 니클라우스(미국)의 오래된 금언을 기억하지 못한 것 같다. 니클라우스는 1981년 이곳에서 열린 디 오픈 첫날 13오버파 83타를 친 이후 사석에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BBC방송은 “세계 거물급 선수들에게 샌드위치의 로열 세인트 조지스는 무덤과 같았다”고 촌평했다.

 많은 선수가 지독한 악천후의 날씨에 나가떨어졌다. 대회장에는 링크스 코스 특유의 바닷바람이 불어닥쳤고 3, 4라운드 때는 시속 50~60㎞의 격렬한 바람이 불었다. 7월임에도 난로를 피워야 할 정도로 바닷바람은 찬 기운을 몰고 왔다. 어떤 선수는 변화무쌍한 날씨에 근육통을 호소했고 사방에서 불어대는 돌풍에 집중하지 못하고 OB구역으로 공을 날려보냈다.

 마음을 다스리고 낮은 탄도로 바람에 맞서면서 그린 주변에서 퍼트 등 쇼트게임 능력이 좋은 선수들이 순위표 상단을 대부분 점령했다. 최종 합계 5언더파로 우승한 클라크와 2언더파로 공동 2위에 오른 필 미켈슨(41)과 더스틴 존슨(27·이상 미국), 1언더파로 단독 4위를 한 토마스 비외른(40·덴마크)이 그들이다. J골프의 임경빈 해설위원은 “클라크와 존슨은 이번 대회에서 유난히 낮은 탄도의 샷을 잘 구사했다. 미켈슨은 원래 높은 탄도를 잘 구사하는 선수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대회장의 열악한 환경을 완벽하게 읽어냈다”고 말했다. 임 위원은 “이번 싸움은 거리가 승부의 열쇠가 아니었다. 로리 매킬로이가 힘을 쓰지 못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클라크는 “바보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매 샷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7오버파로 공동 25위에 그친 매킬로이는 “날씨에 따라 성적이 좌우되는 이런 대회는 좋아하지 않는다”며 “이런 환경에서는 내 스타일의 경기를 할 수 없다”고 항변했다. 지난해 US오픈 우승자로 컷 탈락(5오버파)한 맥도웰은 “US오픈 당시에도 4라운드 내내 긴장하는 법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두 라운드에서도 긴장이 계속됐다”고 자신을 낮췄다. 그는 “내 스스로에게 어떤 중압감을 가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도 했다. 랭킹 1위 도널드는 “나의 능력을 믿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잠재력을 살리지 못했다”고 실토했다. 1타 차로 컷 통과에 실패한 웨스트우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대회장을 떠났다.

최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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