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에너지 민족주의 시대’ 우리가 사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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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정우진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고유가 시대로 접어들면서 자원은 하나의 거래 상품이 아니라 자원부국의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담보하는 전략상품으로 변했다. 이에 따라 세계 에너지·자원의 수급과 가격에 대한 자원부국 국영 석유기업들의 영향력이 빠르게 강화되고 있다. 이들은 과거 오일 메이저에 일임하던 자원개발 방식에서 탈피, 상당한 기술력과 자금력을 갖추고 자국에서 독자적인 광구개발 사업을 확대할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해외 광구까지 넘보고 있다. 2010년 기준으로 매장량 규모에서 세계 상위 10대 기업은 모두 국영기업이며, 생산량 규모는 상위 10대 기업 중 7개 기업이 국영기업이다.

 자원부국만이 아니라 자원 수입국에서도 국영기업을 중심으로 해외 광구 진출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중국·인도·말레이시아 등 아시아계 국영 기업들은 오일 메이저에 대항하는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하는 추세다. 석유공사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자원개발 국영기업들도 이들과 함께 첨예한 해외 광구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최근 국제시장에서 매물로 나온 석유기업이나 유전은 대부분 이들 아시아계 국영기업들이 흡수하고 있다.

  앞으로도 자원개발 산업에서 오일 메이저들의 시장 지배력은 점진적으로 감축되는 반면 국영기업들의 내부 역량과 국제시장에서의 영향력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곧 향후 세계 자원시장이 서방의 오일 메이저 중심에서 국영기업을 주축으로 재편됨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19일 아시아 지역의 국영 석유기업들을 중심으로 서울에서 개최될 ‘아시아 국영 석유개발기업 포럼’은 국영기업 간의 새로운 전략적 협력을 모색하는 자리로서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현 상황에서 국영 석유기업들 간에는 협력보다는 경쟁이 더 일상적 관계로 볼 수 있다. 자원부국과 수입국의 국영기업들은 서로 광구 수익을 더 차지하려는 관계이며, 자원 수입국의 국영기업들은 다른 기업보다 하나라도 더 자원을 획득해야 하는 경쟁관계다. 그러나 국제 자원시장에서 경쟁만 계속된다면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없다. 3년 전 우리나라 석유공사가 먼저 주도해 ‘아시아 국영 석유개발기업 포럼’을 개최한 것은 자원 경쟁에서 자원 협력으로 전환을 시도하기 위한 시의적절한 조치였으며 아울러 국제 자원시장에서 우리 국영기업의 역할을 증대시키는 효과도 수반했다. 이 포럼은 비록 아시아권에 국한되지만, 세계에서 처음으로 국영 석유개발기업 간의 모임을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이 포럼에서 아시아계 국영 석유기업들은 경쟁을 지양하고 협력을 통한 공생 방안들을 다양하게 토의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뿐만 아니라 중동 및 아프리카 등 아시아권 외의 석유·가스가 풍부한 지역으로 공동 진출하면서 기술 역량, 재정 능력 등 석유개발에 필요한 여러 요소를 서로 교류할 수 있는 방안이 도출되기를 바란다. 우리나라는 이 포럼을 발판으로 아시아의 자원부국뿐만 아니라 중국·인도 등 대규모 자원 수입국과도 상시적이고 전략적인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플랜트, 건설, 금융 같은 자원개발과 관련한 분야들이 연계해 진출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정우진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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