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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 콩쿠르 기적의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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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병권
한국메세나협의회 사무처장

최근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에서 한국의 젊은 음악가 다섯 명이 무더기 입상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차이콥스키 콩쿠르가 어떤 대회인가. 1974년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피아노 2위에 오른 뒤 귀국하여 카퍼레이드를 벌였던 ‘클래식의 올림픽’이다.

 콩쿠르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피아노 부문에서 2위를 차지한 손열음과 3위 조성진, 바이올린 3위 이지혜, 여자 성악 1위 서선영은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 길러낸 인재들이다. 고(故)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이 뿌린 씨앗이 15년 넘게 음악 영재 발굴로 이어져 거둔 쾌거다. 기업 메세나(Mecenat)의 좋은 본보기다. 손열음씨는 “항상 좌석 맨 앞에서 열렬히 기립박수를 쳐주신 박성용 명예회장님의 힘찬 응원이야말로 가장 큰 격려였다”고 말했다.

 지금 세계는 한국의 뛰어난 예술인들을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가슴은 허전하다. ‘예술 한류’가 국가나 사회의 전폭적인 지원과 전략에 기반하지 못한 채 지극히 개인적인 노력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국회, 우리 사회 모두가 그저 박수 한 번 쳐주는 관객 수준에 머물고 있는 현실이다.

 2009년 11월 기업들의 문화예술 지원과 참여를 획기적으로 늘리기 위한 ‘메세나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메세나법)’이 처음 입안됐으나 아직도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문화예술 지원 기업에 대한 세액 감면을 골자로 한 이 법안은 기업의 문화기부에 대한 의욕과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세액 감면이 세수 감소로 이어질까 우려한다. 한국메세나협의회가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법안 도입 효과를 연구한 결과, 1년에 약 300억원의 세수 감소가 예상된다. 반면 법안이 도입될 경우 기업들은 지원액을 1000억원 정도로 늘리겠다고 응답했다. 세수 감소액보다 3배 많은 기업의 예술 지원이 생기고, 이를 통해 예술계의 창작활동이 활발해진다면 사회적으로 큰 이익이 될 것이다.

 메세나법은 한 나라의 문화수준을 높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기초예술은 국민의 문화생활을 향상시킬 뿐 아니라 미래성장을 선도할 문화산업의 뿌리가 된다. 정부와 국회가 하루빨리 문화 선진국으로 가는 디딤돌을 놓아주길 바란다.

이병권 한국메세나협의회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