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이여, 유엔(UN)이여! 지옥으로 가는 우리를 구출하여 준다는 것은 우리의 신념이라.’
6·25전쟁 당시인 1950년 10월 평양으로 진격한 국군이 납북자들이 감금됐던 평양형무소를 찾았을 때 북한군은 이들을 모두 끌고 사라진 뒤였다. 감방에는 구출을 바라는 한 납북자의 간절한 글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의 염원은 6·25 61주년이 지나도록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6·25 납북자들은 피랍과 가족들에 대한 연좌제, 세인의 관심에서 망각되는 3중의 고통을 겪었다.
6·25전쟁납북진상규명위원회가 이 같은 아픔을 달래주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해 12월 첫 회의를 한 6·25납북진상규명위는 김황식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맡고 현인택 통일부 장관과 전문가, 납북자 가족대표 등 14명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위원회는 지난달 말 6·25전쟁 61주년을 계기로 납북사건의 진상규명과 납북자·가족들의 피해조사 및 명예회복을 본격적으로 추진키로 했다. 이를 위해 위원회는 납북자 피해신고를 국내(안내전화 1661-6250)는 물론 해외공관에서 받고 있다. 6·25 납북자는 9만6000여 명으로 추정된다.
관련 법률을 발의했던 박선영 의원은 “추진력을 더하려면 납북 일본인 17명을 위해 납치 전담장관을 둔 일본처럼 납북자 담당 특임장관을 임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과거사위원회는 1894년의 동학운동까지 거슬러올라가 훑었지만 민족 최대의 비극인 6·25 때 북한이 자행한 민간인 납치는 손대지 않았다”며 “6·25 납북진상규명위는 균형감 있는 과거사 정리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 살 때 아버지가 북한군에 끌려간 이미일 6·25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은 “ 2000년 9월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납북자 480명 문제 해결에 노력하겠다’고 말하는 걸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며 “그때 정부는 6·25 납북자 9만 명을 버린 셈”이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계획적 납북을 규명할 국내외 자료 등을 확보하고 가족들의 DNA 샘플을 채취해 납북자 신원 확인 및 유해 송환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일 이사장은 “납북자 가족들이 더 이상 ‘단장의 미아리고개’를 부르지 않아도 되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