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군부 “선거 결과 수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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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친탁신당인 푸어타이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는 대승을 거둔 3일 총선 이후 태국 정국이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푸어타이당의 총리 후보인 잉락 친나왓은 4일 오후 찻타이파타나당(19석)과 찻 파타나푸어 판딘당, 파랑촌당(각각 7석), 마하촌당(1석)과 함께 5개 정당이 참가하는 연정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전체 500석 가운데 299석의 거대 연정이 출범하게 된다. 선거 기간 우회적으로 푸어타이당을 압박했던 군부도 한 발짝 물러나며 결과에 승복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프라윗 옹수완 국방부 장관은 “군부는 선거 결과를 인정한다”며 “정치인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군부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프라윗 장관은 “국민은 총선을 통해 민의를 명확하게 보여줬다”며 “군부는 아무런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선거 결과를 수용한다”고 말했다.

 외교 소식통은 “태국 정치가 2006년 군부 쿠데타 이전 왕실-군부-탁신으로 이뤄진 삼각 균형점을 찾아가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많다”고 말했다.

 정권 교체에 성공한 푸어타이당도 들뜨지 않고 자세를 낮추고 있다. 잉락은 “이번 승리는 푸어타이당의 것이 아닌 태국 국민 모두의 승리”라며 발언을 신중하게 하고 있다. 군부를 중심으로 하는 반탁신 진영을 자극해 이로울 게 없다는 계산 때문이다. 탁신 전 총리도 4일 도피 중인 두바이 자택에 몰려든 기자들 앞에서 “권력을 다시 잡을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그는 “(태국으로) 돌아가는 게 꼭 정계 복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며 “총리직에 복귀할 수 있다고 해도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너무 오래 푸어타이당과 함께해 왔고 62세인 만큼 이제 은퇴하고 싶다”며 “프로 골퍼로 데뷔해 볼까 생각 중”이라고 농담했다.

 4일 방콕 뉴페치부리가(街) OAI 빌딩의 푸어타이 당사에서 만난 당직자들은 한결같이 ‘대승, 압승’ 같은 말을 아끼면서 조심했다. 빨간 티셔츠를 입은 탁신 지지자들은 “선거가 끝났지만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당국의 조사가 기다리고 있고 군의 동향도 신경 쓰여 떠들썩하게 잔치 벌일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탁신당 관계자들이 몸을 낮추는 이유는 탁신이 쫓겨난 2006년 이후에도 선거마다 이겨 집권했지만 사법부에 대한 군의 영향력이 건재해 권력을 빼앗긴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2007년 탁신의 후계자를 자임한 사막 순다라벳 전 총리가 이끄는 ‘국민의 힘’(PPP)당이 집권했으나 ‘옐로 셔츠’ 시위대가 일어나 2008년 여름부터 총리공관과 정부청사, 수완나품 국제공항과 돈므앙 공항을 점거한 채 격렬히 저항했다. 결국 2008년 12월 혼란 속에서 태국 헌법재판소는 선거법 위반 혐의로 친(親)탁신당의 해산을 명령했다.

 해외에 도피 중인 탁신도 “올 12월 딸 결혼식에 참석하고 싶지만 사회 안정과 맞바꿀 만한 사안은 아니다”라며 자제심을 보였다. 잉락이 첨예한 계층 갈등의 늪에 빠져 중도 사퇴하지 않고 롱런하는 길은 안정뿐이라는 것을 탁신도 인정한 것이다.

방콕=정용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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