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성적 시원찮다고 때리고, 이성 교제 막고 … ‘아빠’가 너무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지난해 11월 열린 한국프로골프투어(KGT) Q스쿨 기간 중 대회장인 군산 골프장의 그린 5개가 훼손됐다. 누군가 밤에 골프장에 침입해 삽으로 그린을 파헤쳐 버렸다. 이로 인해 경기 진행이 엉망이 됐다. KGT와 경찰은 Q스쿨 예선에서 탈락한 선수의 부모가 저지른 사건으로 보고 있다. 81개나 되는 군산 골프장의 홀 중 유독 대회가 열리는 홀의 그린만 훼손됐고, 캄캄한 밤에 정확히 코스를 찾아낸 점으로 미뤄본 결과다. 증거가 없어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빗나간 골프 대디’의 그림자가 짙다. 과거 LPGA 투어 등에서 에티켓에 어긋난 행동으로 국내외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1세대 골프 대디’들은 대부분 현장을 떠났다. 부모가 캐디를 맡는 경우도 드물어졌다. 그러나 자녀를 박세리나 신지애처럼 큰돈을 버는 스타로 만들겠다는 의욕에 충만한 골프 대디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경쟁이 심해지면서 주니어 대회에서뿐 아니라 일부 프로 대회에서도 골프 대디의 일탈이 적잖이 물의를 빚고 있다.

 국내 주니어 대회는 대부분 갤러리 입장을 금지하고 있다. 부모가 갤러리로 골프장에 나타나 규정에 금지된 어드바이스를 하거나 다른 선수들에게 지장을 줄 정도로 박수를 치거나 선수를 윽박지르는 경우가 많아서다. 공이 떨어지는 지점에 가 있다가 공을 좋은 곳으로 던져 주는 일도 더러 발생했다.

 골프를 하는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됐다. 골프 대디에 의한 폭력도 줄지 않고 있다. 2008년 11월 16일 제주 세인트포 경기장에서 벌어진 레이디스 유러피언 투어 겸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투어 세인트포 마스터스 대회 도중에는 한 선수가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해 외국 선수들이 항의하는 사태까지 있었다. 주니어 선수를 가르치는 한 레슨프로는 “집에서 부모에게 맞고 나오는 학생이 드물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한 여자 주니어 유망주는 공식 경기에서 동료 선수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태연히 알까기(공을 잃어버린 후 찾은 것처럼 몰래 다른 공을 떨어뜨리는 행위)를 하고 동반 경기자들이 써준 스코어카드를 다시 써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평소 아버지의 등쌀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이 학생이 잠시 정신장애를 일으킨 것으로 주위 사람들은 보고 있다.

 KLPGA 투어의 젊은 선수들 중에는 “아버지가 경기장에 오면 일부러 컷 탈락하겠다”고 말하는 선수도 있다. 중고 시절 아버지에게 심하게 폭행을 당하는 등의 상처가 있는 선수들이다. 한 유명 선수와 후원 계약을 맺은 한 스폰서는 계약서에 “아버지가 경기장에 나타나면 계약을 해지한다”는 문구를 넣었다. 그의 아버지가 골프장에서 많은 물의를 빚었고 선수의 성적에도 나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골프 대디는 성적을 위해 자식의 사생활도 철저히 감시한다. 이런 점은 선수의 어머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남자 유명 선수의 어머니는 아들이 여자 선수와 사귄다는 얘기를 듣고 여자 선수의 훈련장으로 찾아가 머리채를 잡고 “내 인생을 다 바친 아이이니 접근하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여자골프계의 한 관계자는 “스트레스가 심하고 이성 친구에 대한 교제를 막자 동성애를 하는 선수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J골프 박원 해설위원은 “너 때문에 집도 팔고 직장도 버리면서 뒷바라지했으니 성적을 잘 내서 그걸 다 갚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잘못된 골프 대디의 전형적인 유형인데 선수에게 부담만 가중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최경주 선수는 “골프 대디는 선수를 자립심 없는 로봇으로 만들기 때문에 그런 부모 밑에서 자라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성호준 기자

골프 대디의 일탈이 만든 천태만상

■ “아버지가 대회장에 나타나면 스폰서 계약을 해지”

- 사고 자주 일으킨 골프 대디의 딸을 후원하는 회사의 계약조건

■ 경기가 열리는 골프장에 그린 5개 삽으로 파헤쳐

- 경찰, 컷 탈락에 분노한 한 골프 대디 소행으로 추정

■ 아들과 사귀는 여자선수 찾아가 머리채 잡고 폭행

- “내 인생을 바친 골프선수 아들인데 감히….”

■ 주니어대회 갤러리 전면 금지

- 골프 대디의 룰 위반 타 선수 경기 방해 너무 심해 내린 조치

■ 국제대회 중 그늘집에서 딸 폭행

- 외국 선수들 경악, 항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