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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가정 자녀에 한국어 교육 시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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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성완종
충청포럼 회장

요즘 TV를 보면 한국어에 능숙한 외국인이 많이 등장한다. 고정 출연자도 있고 초대손님도 있다. 아예 외국인만 출연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TV에 나와 능숙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외국인들은 대부분 경제적 어려움 없이 오로지 취업이나 학업을 위해 우리나라에 온 사람들이다. 하지만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 가운데는 한국어 문제로 인해 고충을 겪고 있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한국말 잘 몰라서 아이 학교 준비물도 못 챙겨주고 숙제도 못 도와줘요. 아이가 학교에서 오더니 ‘왜 엄마는 한국인이 아니고 몽골사람이야?’라고 묻는데 가슴이 아파서…”. 한 다문화가정 어머니의 자책 섞인 고민이다. 과연 이것이 하나의 다문화가정 어머니만의 고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녀를 초·중학교에 보낸 결혼 이민 여성들에게 한국은 제 2의 고향이다. 하지만 결혼 후 수년 동안을 한국에서 살아도 이들은 우리말의 발음과 표현이 미숙해 자녀 교육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교육과학기술부 통계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초·중·고교에 재학 중인 다문화가정 자녀는 3만1788명으로 2005년 이후 5년 사이에 다섯 배 이상 증가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2020년에는 우리나라 청소년의 20%가 다문화가정 출신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렇듯 다문화가정 자녀수는 급격히 늘어나는 데 비해 그들의 진학률은 감소하고 있다. 다문화가정 자녀들의 초등학교 취학률이 85%이나 중학교로 올라가면 60%로 감소하고 고등학교에 이르면 30%로 급락한다. 진학률이 낮아지는 주요 원인이 바로 한국어 문제다. 한국어가 미숙한 다문화가정 자녀들은 수업과 교우관계에 어려움이 생기고, 결국 누적된 학습격차로 인해 도태되고 만다. 더욱이 다문화가정의 40% 이상이 상대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심한 농어촌에 밀집되어 있어 대부분의 부모가 경제활동으로 자녀들을 잘 돌보지 못해 사실상 아이들은 빈집이나 거리에 방치되어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행정안전부를 포함한 4개 부처가 다문화가정을 위한 한국어교육표준화협약을 맺고 한국어 교육을 표준화하는 한편 교육기관을 종전 76개소에서 300개 이상으로 대폭 확대했다. 하지만 체감효과는 아직 크지 않다. 특히 다문화가정 지원업무를 총괄하는 담당 부처가 없다 보니 부처 및 지방자치단체가 제각각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 제대로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나의 무한의 나라는 사고(思考)다. 그리고 나의 날개 있는 도구는 말이다.” 독일의 문학가 프리드리히 실러의 말이다. 언어는 살아가는 모든 것의 기본이자 ‘적응’ 그 자체다. 다문화가정에 대한 여러 지원 중에서도 언어 교육이 최우선시되어야 한다. 언어에 능통한 인재가 곧 글로벌 리더가 되는 시대이며 이는 곧 우리나라의 소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이들의 한국어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잠재력이 빛을 보지 못하고 시들어 버릴지도 모른다.

성완종 충청포럼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