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피플] 한국전기초자 서두칠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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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부채비율 1천1백14%에 6백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기업이 지난해 부채비율을 94%로 낮추고 1천32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TV브라운관 및 컴퓨터 모니터용 유리를 만드는 경북 구미의 한국전기초자. 세계 4위의 생산설비를 갖춘 채 1천9백여명의 직원이 일해온 탄탄한 회사가 97년 소형 모니터 등의 수요가 급감하면서 갑자기 어려워졌다. 일부 생산설비의 가동을 중단했고 노조는 77일동안 파업했다.

미국계 컨설팅사인 부즈알렌&해밀턴은 기술이 처지고 노사관계가 불안하다며 '회생불능' 판정을 내렸다. 결국 25년동안 경영해온 한글라스가 손떼고 대우그룹 계열사인 오리온전기에 매각됐다.

대우는 서두칠(徐斗七.61)대우전자 국내영업 부사장을 해결사로 보냈다. 97년 12월 3일 부임한 그는 지금까지 단 하루도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徐사장은 공장 부근에 16평짜리 아파트를 구해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직접 차를 몰고 오전 6시에 가장 먼저 출근해 공장을 둘러보았다. 서울의 사장실과 기획실을 폐쇄해 구미로 옮겼다.

'1년 3백65일 현장 고수' 가 원칙으로 취임이후 지금까지 하루도 쉰 적이 없다. 현장 직원에게 1백여차례 경영현황을 설명했다. 일방적으로 주거나 요구하지 않고 직원들이 스스로 바뀌도록 목표와 비전을 제시했다.

그 대표적인 목표가 바로 '3890프로젝트' .3은 3천만개의 제품생산, 8은 고도의 정밀성이 요구되는 앞면 유리에 황금의 수율(收率)이라는 80%, 9는 상대적으로 만들기 쉬운 뒷면 유리의 수율 90%, 0은 고객의 불만이 전혀 없도록 함을 뜻한다.

당시 이 회사의 생산용량은 1천4백만개, 수율은 40%대였고 고객의 불만도 많았다. 종업원은 물론 업계도 고개를 내저었다.

徐사장은 우선 시스템을 바꿨다. 인원은 한명도 줄이지 않고 제품에서부터 노사관계에 이르기까지 특유의 '구조조정' 을 실행했다.

▶제품은 저부가가치에서 고부가가치 대형으로▶기술은 라이선스에서 자체 개발로▶생산은 공정 개선으로 병목현상을 없앴고▶판매는 국내에서 세계시장으로▶자금은 단기 고금리에서 장기 저리로▶노사관계는 대결에서 화합으로▶의식은 패배감에서 도전정신으로 바꿨다.

徐사장은 3교대인 종업원의 업무시간에 맞춰 새벽 3시에도 경영설명회를 가졌다. 종업원 부인들을 직접 만나 회사 형편을 설명했다. 노조도 적극적인 협력자로 나섰다.

한국전기초자는 '3890' 가운데 '890' 은 지난해 달성했다.3은 올해안에 이룰 계획이다.지난해 11월 대우 채권단의 지침에 따라 일본 아사히 유리가 한국전기초자를 인수했다.

97년 당시 주당 1만4백원으로 51%의 지분을 3백49억에 인수했던 오리온전기는 주당 5만2천원인 2천99억원에 팔았다. 아사히 유리가 인수한 뒤에도 감원은 없었고, 오히려 조장 등 직원들이 대거 승진했다.

徐사장이 취임하면서 제시한 '98년 혁신.99년 도약.2000년 성공' 이란 목표에 따라 회사는 종업원에게 올해 성과급 1천1백%를 약속했다. 아사히 유리가 간청해 사장직을 계속 맡은 그는 "변화는 이제 시작이며 직원 스스로가 회사를 변화시키도록 만들겠다" 고 강조했다.

구미〓이석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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