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자사주 소각검토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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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는 방안을 검토하게 된 것은 바로 주가 때문이다. 지난해 사상 최대의 매출과 순익을 올렸는데도 주가는 지난해말 주당 26만6천원에서 옆걸음질 치고 있다(2일 종가 26만1천원).

올들어 주가가 다소 떨어지긴 했지만 코스닥 시장의 대표기업인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주가는 1백39만5천원(액면가 5천원 환산시)이다.

다음 외에도 코스닥시장에는 설립한 지 1~2년밖에 안됐으면서도 주가는 20만~30만원대를 웃도는 벤처기업들이 많다. 매출이나 순이익.자본금 등 재무제표를 보면 삼성전자가 월등하다.

이런 상황을 보고 삼성은 획기적인 주가관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지난달 50%의 고율 배당을 하기로 결정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주총을 앞두고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소액주주의 움직임이 과거 어느 때보다 더 공격적일 전망이어서 주주보호와 주가관리가 시급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조3천억원의 경상이익을 냈으며, 부채비율도 98년 1백98%에서 85%로 크게 낮췄다.

◇ 다른 기업 움직임〓삼성전자뿐 아니라 많은 상장사들이 요즘 주가관리에 부쩍 신경쓰고 있다. 상장사들은 기업설명회(IR)는 물론 배당.자사주 매입.종업원지주제.스톡옵션(주식매입선택권)도입 등을 꾀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삼성전자의 자사주 소각 방침을 계기로 회원사나 업종별 공동 주가관리 활동을 적극 추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경련 유한수 전무는 "삼성전자가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다고 볼 수 있어 주주이익의 극대화를 위한 방편으로 자사주 소각을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 '이라며 "다른 기업들도 투명하고 대주주의 집중을 막는 장치만 있다면 이같은 방법을 고려해 보는 것도 좋을 것" '이라고 말했다.

특히 재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자사주 소각을 통해 주식의 시장가치가 오르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얻게 되면 다른 기업들도 잇따라 이같은 방법을 추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재계의 구심점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전경련이 나서 공동으로 자사주 소각을 통한 주식가치를 높이는 방안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또 업종별로 대형 기업들이 나서서 자사주 소각을 선도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전경련은 내달초 증권거래소와 각 기업체 최고경영자들이 함께 모임을 갖고, 홍보하는 방법을 모색키로 했다.

또 현재 주가가 저평가돼 있는 건설업종 등에 대해 공동으로 지방을 돌며 순회 기업설명회를 실시키로 했다.

◇ 외국 사례〓주식을 사들여 소각하는 방법 등으로 주가관리를 하는 것은 한국에선 전례가 없지만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보편화돼 있다.

미국의 경우 95년 이후 기업 인수.합병과 자사주 매입에 의한 주식소각이 신규 주식발행수를 웃돌아 98년 한햇동안에만 줄어든 미국 기업 주식이 1천8백60억달러어치에 달했다.

일본도 전경련과 비슷한 단체인 게이단렌이 주관이 돼 주요 회원사들이 돈을 모아 주식을 산 뒤 이를 소각하는 방안을 실시한 적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지난 10년간 8차례의 액면분할과 1백12억달러 규모의 자사주를 취득해 소각한 사례가 있다.

코카콜라는 84년 6백만주의 자사주를 매입한 이후 10년간 1백85억달러어치를 사들였다. 이런 주가관리 노력으로 10년간 다우 지수가 4.6배 오르는 동안 코카콜라의 주식가치는 13배가 올랐다.

◇ 절차〓삼성전자가 자사주를 취득한 뒤 이를 소각하는 데 법적으로 걸리는 문제는 없다. 다만 주식소각은 감자에 해당되기 때문에 상법상 주주총회에서 주주의 3분의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증시 관계자는 이보다는 주식소각후 있을지도 모르는 액면분할쪽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 삼성전자의 주가가 너무 고가여서 일반투자자들은 사기도 어렵고, 설사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팔기가 쉽지 않은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액면분할이 이뤄질 경우에는 분할 비율에 따라 주가가 일단 낮아지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접근이 쉬워져 주가가 오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철호.김시래.송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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