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철의 ‘부자는 다르다’] ‘구정물에 손 담근 대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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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철
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
부자학연구학회 회장

우리나라에서 1980년대 이후 전체 국민소득에서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소득의 비율이 점점 떨어지고 있습니다. 자본 이득의 비중은 점점 늘어갑니다.

 제가 ‘죄악 부자’라고 부르는 이들이 치부(致富)에 써먹는 전형적 방법이 있습니다.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는 것들을 악용하는 것이지요. 땀 흘려 버는 근로소득이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땡’으로 먹는 불로소득도 아닙니다. 일부 부자들은 바로 ‘사회적 관계’를 활용해 재산을 불립니다. 저는 이것을 ‘사회소득(social income)’이라고 부릅니다. 예컨대 국민 대부분이 가장 불공정하다고 지적하는 게 ‘불법 상속’과 ‘탈세’인데, 이것도 부자들의 사회소득의 일부죠. 물론 금융실명제와 종합부동산세, 해외탈루 조사 등을 통해 악성 사회소득이 상당히 줄어든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죠.

 왜 그럴까요. ‘정상적으로 돈 모으기 힘들다’는 그들만의 하소연을 밑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한국의 부가세율이 너무 높다며 무자료 거래를 밥 먹듯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상속세율이 높아 불법 상속할 수밖에 없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물려받을 재산이 100억원 정도면 37%가 과세되고, 500억원 정도면 48%를 세금으로 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는 조직’과 ‘자기의 것’을 제대로 구분할 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손 안에 있는 것 말고는 모두 남의 것입니다.

  회사를 창립한 뒤 ‘판공비’를 없애버린 어느 오너, 자기 회사에서 만든 몇 만원짜리 물건을 사면서 양복 안 지갑에서 자기 손으로 현찰을 꺼내어 지불한 어느 여성 부자, 거액 기부를 하겠다는 제안이 들어왔을 때 그 돈이 필요한 다른 곳에 드리라고 거절한 사회기관의 운영자. 제가 그동안 만났던 이런 분이 많아지는 세상이 돼야 합니다. 이슬람교는 ‘가난한 사람이 부자보다 500년 먼저 천국에 들어간다’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아마도 부자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깨끗한 부자가 많아져야 한다는 소리지요.

 부자들이 좋은 일에 돈을 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돈보다는 회사 돈을 통해 생색을 내고 폼을 잡으며 대접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물론 가만히 있는 것보다야 낫지만, 아무래도 진정성은 퇴색되기 마련입니다. 기업인 한 분이 대학생 앞에서 강의하는 걸 들었습니다. 그는 “회사 돈 1원도 없이 오로지 모든 임직원의 돈을 모아 봉사 법인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회사의 종업원은 1000명도 안 됩니다. 중견기업의 모든 임직원이 과연 수십억원짜리 사회봉사 법인을 만드는데 돈을 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에게 “정말로 회사 돈을 사용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을 못했습니다. 자신의 돈만으로 좋은 일을 해야 합니다. 물론 그게 그리 쉽진 않습니다. 성자(聖者)로 추앙받는 고(故) 테레사 수녀는 범죄자가 준 기부금을 받은 뒤, 그 대가로 사면 요청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고 합니다. 남의 돈이란 게 그만큼 어렵습니다. 제가 아는 어느 스님도 생각납니다. 어느 날 길을 걷다 동전이 떨어진 것으로 알고 주웠더니 병 뚜껑이었습니다. 그는 돈에 욕심을 가진 자신이 죄를 졌다고 생각해 6개월 동안 앉아서 참회하다 그만 하반신 마비가 되었답니다. ‘사회소득’이라는 떡고물에 군침을 흘리지 않는 곧고 바른 사람이 많아져야 합니다. 평생 자신의 이름으로 된 통장을 가진 적이 없었다고 알려진 고(故) 한경직 목사처럼 말이죠.

 더럽게 벌어들인 ‘사회소득’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모두 세상에 돌려주고 가면 어떨까요. 자기를 기만하고, 더러운 구정물에 손 담근 대가로 얻은 ‘사회소득’을 통해 재물 탑을 쌓으면 어떻게든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저는 부자들을 만나면서 많이 목격했습니다. 저는 ‘자기만족’과 ‘사회만족’이 일치할 때 ‘최고의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자들의 진정성 담긴 행위가 늘 때 사회도 한 뼘 더 행복해질 겁니다.

한동철 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부자학연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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