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아, 그러니까 여왕이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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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연아(21·고려대)가 29일(한국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아이스팰리스 메가스포츠 빙상장에서 열린 2011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지젤’의 아름다운 선율에 맞춰 연기를 펼치고 있다. [모스크바=뉴시스]

한 차례 실수는 있었다. 하지만 문화와 예술의 도시, 러시아 모스크바에서도 여왕의 위엄은 변함없었다.

 ‘피겨 퀸’ 김연아(21·고려대)가 올림픽 챔피언의 저력을 발휘했다. 김연아는 29일(한국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아이스팰리스 메가스포츠 빙상장에서 열린 2010~2011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기술점수 32.97점, 예술점수 32.94점으로 총점 65.91점을 받았다. 2위 안도 미키(일본)와 0.33점 차다. 안도가 한 차례의 실수도 없이 나무랄 데 없는 연기를 했지만 한 차례 실수를 한 김연아의 점수가 더 높았다. 김연아의 라이벌 아사다 마오(일본)는 기술점수 27.92점, 예술점수 30.74점으로 58.66점을 기록하며 7위에 올랐다.

 새 의상을 입고 30명의 선수 가운데 마지막으로 은반에 선 김연아는 배경곡 ‘지젤’이 흐르자 가냘픈 발레리나로 변신했다. 구슬픈 눈빛, 애절한 몸짓은 드넓은 빙상장을 가득 채웠다. 알리사 시즈니(미국)의 코치인 유카 사토는 “김연아가 은반에 서면 다른 선수들은 안중에 없고 김연아에게만 집중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 말처럼, 모든 관중은 숨을 죽인 채 김연아에게 빨려들었다.

연기를 끝낸 김연아가 점수(65.91점)를 확인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모스크바=뉴시스]

 첫 번째 과제는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 루프 콤비네이션 점프. 하지만 트리플 러츠 착지가 불안해 트리플 토 루프를 마저 뛰지 못했다. 김연아는 경기 전 몸을 풀면서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 루프를 뛰었을 때도 뒤 점프를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그 잔상이 남은 듯했다. 시즌 첫 대회, 평소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은반을 휘젓던 김연아는 이날 경기 전 팔을 앞뒤로 흔들며 손뼉을 몇 차례 치는 등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김연아는 당황하는 대신 노련미를 발휘했다. 트리플 플립 점프에 더블 토 루프 점프를 붙여 뛰면서 7.6점을 받아 냈다. 한 차례 흔들린 뒤 김연아는 오히려 평정심을 찾았다. 이후에는 농익은 연기. 플라잉 싯스핀에서 최고 난도인 레벨 4를 받은 김연아는 더블악셀에서 4.3점을, 레이백스핀에서 3.99점을 챙겼다.

 

특히 김연아가 경기의 하이라이트로 꼽은 스텝 연기는 백미였다. 우아한 몸동작과 애절한 표정연기까지. 볼쇼이 발레단의 프리마돈나가 이토록 우아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감동적인 연기가 이어졌다. 김연아는 스텝에서 4.23점을 따낸 뒤 마지막 체인징풋 콤비네이션 스핀에서 4.64점을 받았다.

 2분50초 안에 최고의 발레 ‘지젤’을 선보인 만큼 예술점에서 김연아는 5개 항목 모두 8점대를 받아 냈다. 이지희 피겨 국제심판은 “연기력 측면에서 지난해보다 감정이 더 풍부해진 것 같다. 첫 번째 점프를 만회할 만큼 실수 없이 잘했다. 연기 구성도 음악에 매우 잘 어울렸다”고 칭찬했다.

모스크바=온누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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