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엄마와 함께] 아프다는 소리 못내는 사물들의 수호천사 ‘끼익끼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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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끼익끼익의 아주 중대한 임무
배명훈 지음, 이병량 그림
킨더주니어, 104쪽
1만1000원

지구를 지키는 건 독수리 오형제라고? 천만의 말씀. 기차가 커브를 돌 때 내는 소리, 마룻바닥이 삐그덕 거리는 소리…. 이 모든 소리는 사실 소리 요정 끼익끼익들이 내는 것이다. 끼익끼익은 아픈데도 아무 소리 못 내는 사물들을 대신해 “아프니까 그만하세요!”라고 외치는 임무를 띠고 있다.

지구에서 태어난 끼익끼익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건 나무로 된 건물에 사는 ‘빼고닥빼고닥’이고, 농구장 마룻바닥에는 ‘아요아요’가 살아 농구화 밑창이 닿을 때 소리를 지른다. 무언가 바닥에 쓰러졌을 때 비상사태가 생겼다는 소식을 전해주는 끼익끼익의 이름은 ‘트닥트닥’.

동화는 이런 끼익끼익들의 존재를 알아채곤 그들의 비명을 듣고 고장 난 기계를 고치는 기술자가 된 아빠가 둘째 딸에게 남기는 편지 형식의 동화다. 저자 배명훈씨는 독특한 한국형 SF를 써내며 주목 받는 소설가다. 그가 세상의 모든 소음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탁월한 상상력은 아이들에게도 환상적으로 다가갈 것 같다.

다시 동화로 돌아가, 아빠는 사랑에 빠지고 아이를 낳는다. 그런데 첫 아이 미성이는 말을 듣지 못하고 목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런 아이가 불편한 게 없는지 잠결에도 귀를 귀울여야 하는 엄마의 귀엔 잠귀가 밝아지게 하는 끼익끼익 ‘사브낙사브낙’이 살고 있었다. 그렇게 온갖 소리를 전해주던 온 세상 끼익끼익이 어느 날 갑자기 싹 사라져버린다. 아빠보다 더 당황한 건 미성이였다. 미성이도 아빠처럼 끼익끼익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빠와 미성이는 끼익끼익들의 행방을 찾아 전파망원경을 들여다본다. 작은 소음에서 시작된 작가의 상상력은 우주로 뻗어 나가고, 안으로는 인간의 마음에까지 스며든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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