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근대여성화가 나혜석 회고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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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도 인간이외다'

20세기 초, 한 여성의 외침은 사회에 큰 충격을 몰고왔다. 이는 당시 지배질서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거침없는 도전이자 페미니즘적 자유주의에 대한 과감한 선언이었다. 이 여성의 말로는 비참했다.

근대여성운동의 선구자 나혜석(나혜석.1896-1948). 그는 국내 첫 여성 서양화가이자 문필가였으며 최초의 여성운동가였다. 여기에 더해 일제와 싸운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

그의 다양한 이력은 그대로 한국근대여성사다. 그만큼 나혜석의 그림자와 발자취는 넓고 크다. 그러나 자유연애와 이혼이 사회적 냉대로 이어지면서 질시와 망각의 대상으로 전락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서울 예술의전당과 나혜석기념사업회가 공동주최하는 `나혜석의 생애와 그림전'은 이런 점에서 의미있는 전시회다. 미술분야에 초점이 맞춰지기는 했으나 그의 파란많은 일생을 재조명하고 근대문화사에 남긴 족적을 헤아리는 기회를 제공한다.

오는 15일부터 2월 7일까지 예술의전당 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는 그의 유작과 사진자료 등 80여점이 선보인다. 자화상, 스페인 풍경, 파리 풍경 등 유작 10점은 그의 예술세계를 일별케 하고 삽화와 목판화 15점, 선전 입상작 등 사진자료 25점도 전시된다. 학적부와 결혼식 사진 30점 가량도 소개된다.

모두 20여점이 남아 있는 그의 작품은 여성의식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게 특징이다. 이는 시, 소설 등 문학작품과 대비된다. 따라서 이번 전시회의 의미를 깊숙히 이해하려면 그의 삶부터 알아야 한다.

관료의 딸로 태어난 나혜석은 진명여학교를 졸업한 뒤 1913년 도쿄여자 미술전문학교로 유학해 국내 첫 근대 서양화가가 됐다. 그뿐 아니라 교포여학생 모임인 `조선여자친목회'를 결성해 기관지를 내는 등 문필활동도 활발히 전개했다.

1918년 귀국한 그는 3년 뒤 국내 첫 서양화 개인전을 열어 화제가 된다. 1920년후 일 외교관이 된 김우영과 결혼해 유럽과 미국 등지를 여행하는 행운을 얻었는데, 이는 그의 사상과 작품세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20년대 후반에는 파리에 체류하며 프랑스의 인상주의를 배우게 된다. 그러나 외국 여행에서 만난 최린과의 염문은 그를 나락으로 빠뜨리고 만다. 1931년 35살의 나이로 이혼당한 나혜석은 1934년 발표한 `이혼고백서'와 최린 상대의 제소장으로 용납될 수 없는 사회적 이단아로 낙인찍혔다. 이후 사회의 냉대와 생활고로 심신이 피폐해진 그는 신경쇠약증세를 보이다 서울의 한 시립병원 무연고자 병동에서 52살 나이로 쓸쓸히 숨졌다.

이같은 삶을 사는 동안 나혜석은 3.1운동에 가담해 옥고를 치르고, 의열단 사건에도 연루되는 등 독립운동에 적극성을 보였다. 소설, 시, 희곡, 산문, 논설,기행문,감상문 등 모든 문학분야에서도 탁월한 기량을 보였다. 1918년에 발표된 자전소설 <경희>는 국내 첫 페미니즘 문학으로 평가된다.

나혜석은 1980년대 후반 문필가로 먼저 재탄생했다. 도덕적 가치관을 저버린 불륜의 여인이 아니라 남성지배에 당차게 도전한 선각자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1990년대 후반부터는 페미니스트 화가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사후 50년만의 일이었다.

따라서 이번 전시회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그의 미술세계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는 절호의 기회다. 전시작도 그의 회고전으로는 가장 많아 나혜석의 인간적 예술가적 진면목을 살필 수 있는 것이다.

전시시간은 평일 오전 10시-오후 5시, 금-일요일 오전 10시-오후 7시. 입장료는 어른 3천원, 초중고생 2천원. 02-580-1300. [서울=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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