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8시30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본관 5층 수술실로 브라질 상파울루 의대 윌슨 코스타를 비롯한 외국인 위암전문의 5명이 들어섰다. 세브란스병원 노성훈(위암센터장) 교수가 집도하는 위암 환자 왕모(64)씨 수술 장면을 보기 위해서였다. 노 교수는 췌장과 간 아래 림프절(임파절)을 제거하고 위의 70%를 능숙하게 절제했다. 외국인 의사들은 “판타스틱!”을 연발하며 수술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외국인 의사들이 19일 서울대병원 양한광 교수(왼쪽 둘째)의 위암 수술을 지켜보고 있다. 오른쪽부터 카나 가벨(인도), 찬드라 모한(인도), 사이먼 로(홍콩) 교수. [김도훈 기자]
이들이 찬사를 보낸 것은 전기소작기 수술법. 노 교수는 암이 전이되지 않도록 림프절을 절제하거나 혈관을 처리할 때 메스 대신 이 기구를 사용했다. 고열로 문제 부위를 지지면서 잘라내 피가 나지 않고 효율이 높아 수술 시간을 3~4시간에서 2시간으로 줄이는 기법이다. 환자 회복도 빠르다. 이 기법은 1996년 노 교수가 처음 발표한 뒤 국제표준이 됐다.
노성훈 교수
한국이 세계 위암 치료의 표준을 만들고 있다. 위암에 가장 많이 걸리지만 치료를 최고로 잘해 위암 치료 강국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인구 10만명당 위암 환자는 41.42명(세계 평균 19.8명)으로 세계 1위지만 생존율은 가장 높은 것이 그 근거다(국제암연구소 2010년 자료).
메디컬 코리아의 힘은 의술이다. 위암 환자가 많고 대형 병원에 집중돼 한 명의 외과의사가 연간 500~600명을 수술한다. 일본은 50명을 넘는 데가 없다. 서울아산병원 김병식(외과) 교수는 “수술을 자주 하면 경험이 쌓여 의술이 발전한다”며 “수술 기법은 일본보다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 수술을 참관한 브라질 의사 칼로스 제이코는 “특유의 정교한 손기술도 한국인만의 장점인 것 같다”고 말했다.
2008년 8월 미국에서 열린 7차 위암 병기(病期:암 1~4기 기준)회의에서 세계 각국은 병기의 새 기준을 만들려고 미국 자료를 사용했으나 엉뚱한 결과가 나왔다.
참석자들은 한국과 일본 자료 중 한국 것을 채택했다. 서울대병원 양한광(외과) 교수는 “한국의 자료가 훨씬 풍부하고 신뢰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 기준이 세계 기준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20~23일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열리는 제9회 국제위암학술대회를 계기로 한국의 위상은 더 올라갈 전망이다. 세계 2000여 명의 위암 전문가가 참가해 1193편의 논문을 발표하는데 이 중 262편이 한국인 것이다. 참가 인원이나 논문 규모가 사상 최대다. 특히 연세대 노성훈 교수가 세계위암학회 회장으로 선임된다.
글=신성식 선임기자, 배지영·박유미 기자
사진=김도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