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오역을 없애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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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조화유
재미작가 영어교재저술가

한국의 어느 백화점이 미국에서 잘 팔리는 블루 진 바지를 수입하려고 가격을 묻는 팩스를 보냈더니 미국에서 ‘$20 for a pair of pants’라고 답장이 왔다. 백화점 직원이 이것을 “빤스 두 장에 20불”이라고 번역해서 사장한테 보고했다는 얘기가 있다. 물론 틀린 번역이다. ‘바지 한 벌에 20불’이 정답이다. 바지는 가랑이가 둘이므로 ‘a pair of pants’가 바지 한 벌이란 뜻이 된다. 또 ‘pants’는 긴 바지이고 ‘panty’가 빤스(팬티)다.

 대한민국 국가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가 해외홍보용으로 펴낸 영문판 한국사 『The History of Korea』 310쪽에 ‘Soon after approving the impeachment motion the ruling party, Open Uri Party, gained a majority in the general election of April 15’이란 문장이 있다. 국회에서 한나라당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가결시킨 후 실시된 4·15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는 뜻으로 영역한다는 것이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은 탄핵안을 가결시킨 후 4·15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즉 탄핵안 가결을 열린우리당이 한 것처럼 오역한 것이다.

 한국 외교통상부가 영어로 된 한국-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문 번역을 잘못해 문제가 되고 있다. 외교부 공무원이면 영어를 잘 할 텐데 이런 기본적인 단어까지 오역을 하다니 처음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외교부가 예산을 아끼려고 무급 인턴들에게 번역을 시켰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돈을 아낄 때가 따로 있지 중요한 FTA 협정문을 무급 인턴들에게 맡기고 감수도 하지 않다니 이건 외교부의 직무태만이다. 

 이런 보도를 보고 사실 필자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공용영어에 대해 한국 정부 당국이 별로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필자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2년까지 3년간이 ‘한국 방문의 해’라면서 주요 관광지 안내물이 이해하기 어려운 조잡한 영어로 쓰여 있다. 3년간이 한국 방문의 해라면 ‘VISIT KOREA YEARS’라고 복수를 써야 한다. 그러나 우리말 ‘해’를 그대로 직역해 ‘YEAR’라고 틀리게 써붙여 놓고 그 앞에서 문화체육부 장관과 대통령 부인이 한국 방문의 해를 선포하는가 하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기 동체에도 ‘YEARS’가 ‘YEAR’로 잘못 쓰인 채 붙어 있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필자가 보기가 하도 딱해서 이런 사실들을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 여러 차례 지적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교육수준이 높은 영어 원어민을 고용, "영어감수팀”을 만들라고 권고했으나 정부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번에 터진 FTA 협정문 오역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반드시 ‘영어감수팀’을 신설해 대한민국의 국격을 더 이상 훼손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기 바란다. 예산이 많이 드는 일도 아니다. 원어민 몇 명 고용하고 컴퓨터만 마련해주면 된다. 외교문서든, 관광안내 책자든, 국가홍보용 책자든, 수출 상품 설명서든 국내에서 작성된 모든 공용 영문은 반드시 이 감수팀을 거치도록 하면 수치스러운 오역은 없어질 것이다.

조화유 재미작가 영어교재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