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 세상을 말하다] 나이 40에 66억원은 모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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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禮記) 곡례(曲禮) 편에는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를 10년 단위로 나눠 이름을 붙였다. 사람이 나서 10년간을 유(幼)라 하고 이때부터 글을 배운다. 스물은 약(弱)이라 하여 갓을 쓰고, 서른은 장(壯)으로서 집을 갖는다. 마흔은 강(强)으로서 벼슬을 하며 쉰은 애(艾)로서 나라의 큰 일인 관정(官政)을 맡는다. 예순은 기(耆)라고 하며 늙었으므로 일을 남에게 시켜도 된다. 일흔은 노(老)로서 일을 후배에 맡기고 여든과 아흔은 기력이 다했으므로 모(<8004>)라고 한다.

옛날엔 잦은 전란과 역병 등으로 쉰을 넘기는 일도 쉽지 않았다. 당(唐)나라의 시성(詩聖) 두보(杜甫)는 그래서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노래했다. 두보 역시 쉰아홉에 생을 마감했으니 칠십이 되는 게 드물긴 드문 일이었다.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다 닳게 하고(白頭山石磨刀盡) 두만강 물은 말에게 먹여 바닥이 나게 하라(豆滿江水飮馬無) 남자 나이 스물에 나라를 평정치 못하면(男兒二十未平國)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고 부르겠는가(後世誰稱大丈夫)’ 북정가(北征歌)를 부른 남이(南怡) 장군은 그 큰 기개가 화가 돼 두보 인생의 반도 안 되는 스물 일곱의 젊은 나이에 세상과 이별했다.

공자는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고(志學) 서른에 마음을 확고하게 세우며(而立) 마흔엔 부질없는 것에 미혹되지 아니한다(不惑)고 했다. 쉰은 하늘의 뜻을 깨닫는 지천명(知天命), 예순은 순리대로 이해하는 이순(耳順), 일흔은 마음에 하고 싶은 바를 좇아 행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의 경지가 된다고도 했다.

최근 중국에서는 둥판(董藩·동번)이라는 44세의 대학 교수가 ‘나이 40에 4000만 위안(약 66억원)의 재산을 모으지 못하면 내 제자라 말할 수 없다’고 말한 게 화제다. 고학력자가 가난하다면 치욕이라는 이야기다. 그의 말에 대해 ‘인생을 돈으로만 환산하느냐’는 비난이 가해지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건 그런 말이 나올 만큼 중국 사회가 미래에 대한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다는 점이다. 반면 ‘고달픈 40대 남성’을 보듬기 위한 한국 사회의 한 인문학 강좌에선 40세는 ‘불혹’이 아닌 ‘부록’이란 자조적 농담이 나오고 있다.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scyo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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