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베이너 ‘윈윈 담판’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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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미국의 2011회계연도(2010년 10월 1일~2011년 9월 31일) 예산안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7일(현지시간). 예산안을 놓고 서로 주장을 굽히지 않는 ‘치킨 게임’을 벌이던 버락 오바마(Barack Obama·사진 왼쪽) 대통령과 공화당의 존 베이너(John Boehner·오른쪽) 하원의장은 백악관 집무실에 마주 앉았다. 베이너는 오바마에게 저소득층 여성의 피임과 낙태 시술을 지원하는 가족계획 예산을 삭감하라고 요구했다. 오바마는 “안 됩니다. 절대로”라고 했다. 베이너가 다시 요구했으나 오바마의 답변은 변함이 없었다. 긴 침묵이 흘렀다. 이날 회의는 합의 없이 끝났다고 뉴욕 타임스(NYT)가 9일 전했다.

 예산안 협상은 8일 밤 11시까지도 타결을 확신할 수 없을 만큼 엎치락뒤치락했다. 오바마는 이날 베이너에게 네 번 전화해 합의를 촉구했다. 의회에서 백악관과 민주·공화 양당 대표가 협상을 벌이는 동안에도 백악관에선 연방정부 폐쇄를 알리는 기자회견 준비가 이뤄져 취재진이 6시간 동안 회견장을 지키기도 했다.

 팽팽한 줄다리기를 계속하던 두 사람의 협상은 8일 밤 오바마가 예산에서 385억 달러(약 42조원)를 깎는다는 공화당 주장을 전격 수용하면서 돌파구가 열렸다. 이는 애초 민주·공화 양당이 합의한 것보다 50억 달러 많은 액수였다. 대신 베이너는 저소득층 여성의 피임과 낙태 시술을 지원하는 가족계획 예산 삭감 주장을 접었다. 오바마는 저소득층 지원이라는 명분을 지켰고 베이너는 385억 달러 삭감이란 실리를 챙긴 셈이다.

 공화당 내 강경 보수세력인 ‘티파티(Tea Party)’의 거센 도전을 받아온 베이너도 이번 협상 타결로 당내 입지가 높아졌다. 오바마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낸 데다 50억 달러 추가 삭감안까지 밀어붙여 관철시켰기 때문이다. 해리 리드(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난 베이너의 주장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가 하원을 운영하는 방식은 좋아한다”고 말했다. 일부 민주당 의원은 “베이너의 협상 자세는 파당정치가 판치는 현재에도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타협한 과거 정당정치의 전통과 맥을 잇는다”고 칭찬했다.

 그러나 백악관과 공화당의 예산전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다음 달 16일께면 찰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부채 한도를 증액하는 게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7일 현재 연방정부의 국가부채는 14조2120억 달러로 한도인 14조2940억 달러까지 820억 달러의 여유밖에 없다. 국가부채 한도가 다 차면 연방정부는 더 이상 자금을 조달할 수 없게 된다. 이는 미 국채 부도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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