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사모곡’ ‘용의 눈물’ 연출한 김재형 PD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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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드라마 ‘여인천하’를 연출할 때 김재형(오른쪽) PD가 촬영 현장에서 정난정 역을 맡은 배우 강수연에게 연기지도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언제나 ‘최초’란 수식어가 따라붙었던 남자, ‘용의 눈물’ ‘여인천하’ 등을 빚어낸 사극 연출의 대가 김재형 PD(한국공연예술종합학교 학장)가 10일 별세했다. 75세.

 고인은 1936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나 경기상고, 동국대 국어국문학과를 거쳐 1961년 KBS 개국요원으로 입사해 최초의 어린이극 ‘영희의 일기’(62년), 첫 TV사극 ‘국토만리’(63년)를 연출했다.

 이후 TBC(동양방송) 개국과 함께 자리를 옮겨 최초의 수사물 ‘형사수첩’(66년), 첫 미스터리 사극 ‘연화’(73년) 등을 연출했다. 최초의 일일연속사극 ‘사모곡’을 비롯해 ‘인목대비’ ‘허부인전’ ‘별당아씨’ 등 사극 시리즈물 ‘여인 500년 시리즈’를 남겼다. TBC에서 시작해 언론통폐합 이후 KBS로 옮겨간 최초의 서민 드라마 ‘달동네’는 50%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기도 했다. ‘똑순이’ 김민희를 배출한 작품이다.

 고인은 약 250편에 달하는 작품을 남겼다. 그의 연출 인생에 정점을 찍은 건 96~99년 방송된 KBS ‘용의 눈물’과 2001년 방송된 SBS의 ‘여인천하’였다. 40~50%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크게 인기를 끌었고,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숨막히는 권력다툼을 그려낸 선 굵은 대하물로 안방 드라마를 멀리하던 중·장년 남성까지 TV 앞으로 끌어들였다.

 ‘용의 눈물’을 연출한 건 정년퇴임 이후의 일이었다. 평소 “PD에겐 정년이 없다”고 말하던 신념을 현실화시킨 것이다. 그러나 SBS ‘왕과 나’를 연출 중이던 2008년 초 건강 악화로 중도 하차하면서 메가폰을 놓았다. 이후 강단에서 후학을 길러내는 데 전념했던 고인은 지난해 광주에서 막을 올린 연극 ‘김치’의 연출을 맡아 현장에 깜짝 복귀하기도 했다.

 젊은 시절 라디오 성우로, 영화 조감독으로 이리저리 뛰던 그가 드라마 연출로 들어서게 된 건 미디어학자 마샬 맥루한이 남긴 한 문장, 즉 ‘TV전파는 잘 사용하면 원자력처럼 인류에 위대한 공헌을 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원자탄이 돼 인류를 멸망시킬 것이다’ 때문이었다고 한다.

 고인은 이처럼 TV전파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의욕을 가슴에 품고 반세기를 달려왔다. 그는 “사극은 재미가 전부는 아니다. 작가와 연출자는 역사적 진실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야 한다”는 사극의 소명론을 주창해왔다. 역사를 드라마로 만들어오던 그는 이제 하나의 역사가 됐다.

 김씨는 한민족문화예술대상(영상예술부문), 한국연극영화예술상(TV연출상), 서울시 문화상(언론부문), 한국TV프로듀서상(공로상), 동국대 금휘장상, 한국방송대상 TV프로듀서상, 위암 장지연상(방송부문), 한국방송프로듀서상 작품상·대상, 한국방송대상 대상, 문화훈장 보관장 등을 수상했다. 유족으로 부인과 2남 2녀가 있다. 큰 아들 창만씨는 영화감독, 두만씨는 CF 감독이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25호실. 발인은 13일 오전 8시30분. 장지는 충북 음성군 상평1리 골상촌. 02-3010-2265.

이경희 기자

김재형씨 대표작

- KBS 국토만리 (1963)

- TBC 개국 사극 민며느리 (1964)

- TBC 사모곡 (1972)

- TBC 인목대비 (1974)

- TBC 별당아씨 (1976)

- TBC·KBS 달동네 (1979~1981)

- KBS 한명회 (1994)

- KBS 용의 눈물 (1997)

- SBS 여인천하 (2001)

- SBS 왕의 여자 (2003)

- SBS 왕과 나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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