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쇼라도 좋다” … 박수받는 캐머런 절약 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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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파리 특파원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부부가 ‘왕소금’ 여행을 한 게 화제다. 불편한 유럽의 저가항공을 이용했고, 숙소는 하루에 18만6000원짜리 3성급 호텔이었다. <중앙일보 4월 9일자 1면
·사진>

 유럽에선 비교적 대중적 휴가지인 스페인 남부에 2박3일간 머물면서 캐머런은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거리의 현금인출기에서 손수 쓸 돈을 뽑았다. 허름한 바에서 부인 서맨사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는 장면도 포착됐다.

 국내 총생산(GDP) 세계 6위의 경제대국 총리인 캐머런은 개인적으로도 부자다. 총리 취임 때 신고한 개인 재산이 60억원 이상이다. 지난해 별세한 그의 부친은 네 명의 자녀에게 그 열 배쯤의 유산을 남겼다. 그는 학비 비싸기로 유명한 사립학교인 이튼칼리지를 거쳐 옥스퍼드대를 나왔다. 영국식 표현으로 ‘은수저를 들고’ 태어난 것이다. 그에게 저가항공 경험은 평생 처음이었을지 모른다.

 부인 서맨사에게는 이번 휴가가 거의 ‘체험 삶의 현장’ 수준이었을 것이다. 서맨사의 부모는 부동산 임대 수입이 어마어마한 대지주로 귀족 작위까지 있다.

 이런 부부가 서민형 여행을 한 것은 정부의 긴축정책 추진에 대한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지난해 총선에서 13년 노동당 집권의 막을 내린 보수당·자유민주당 연립정권은 재정 위기 타개를 위해 고도의 긴축을 진행하고 있다. 공무원 수와 각종 복지 수당을 줄이고, 부가가치세를 올렸다. 그 결과 한 가정 평균 1년에 150만원 이상 가처분 소득이 줄었다. 물론 국민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캐머런은 취임 직후 장관을 포함한 공무원들에게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관용차를 이용하지 말라고 지시하며 관용차를 20%가량 줄여버렸다. 자신은 관저에서 의회까지 자주 걸어 다닌다. 서맨사는 관저에 입주할 때 원래 사저에서 쓰던 가구와 집기를 대거 옮겨왔다.

 허리띠 졸라매기 솔선수범 덕분인지 캐머런에 대한 최근의 지지율은 약 47%(ICM 조사)로 총선 때의 보수당 득표율(36%)보다 오히려 높다. 야당인 노동당의 당수보다 17%포인트 앞선 수치다. 영국의 일부 언론은 “총리의 휴가가 연출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 댓글에는 “설사 쇼라고 하더라도 보기 좋고 시원하다”는 반응이 더 많다. 이것이 국민과 소통하는 정치가 아닐까.

이상언 파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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