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이 조조, 손정의가 손권이면 우린 유비!

중앙일보

입력

삼성물산에서 날고 기는 인터넷 전문가들이 10여명 뭉쳐서 뛰쳐나왔다. 지난 99년 4월이었다. 꿈은 세계 제패였다.

그리고 8개월, 새 천년 1월1일자로 새로운 개념과 기술의 사이버 공동체(cyber community)시대가 열렸다. (주)자유와 도전의 프리챌(www.freechal.com, 社名 자유와 도전의 영문 약자)이 그것이다.

사이버 공동체를 표방한 것은 프리챌 뿐아니다.
다음커뮤니케이션과 하늘사랑도 커뮤니티를 표방하고 있다. 골드뱅크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무료 이메일이나 무료 홈페이지, 경품 제공 등을 통해 회원을 모은 후 이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형성했다.

반면 프리챌은 처음부터 커뮤니티 전문 사이트를 표방했다. 공동체를 하나의 단위로 보고 이들이 직접 홈페이지를 만들고 회원들을 모아 커뮤니티를 유지·발전시킬 수 있도록 했다. 공동체에 대한 기본 발상이 다르다.

기성복과 주문복의 차이도 있다. 기존의 사이버 공동체는 공동체를 구성하려는 사람들에게 일정한 메뉴를 제공해 “여기에 맞추라”는 식이다. 게시판, 공지사항, 방명록, 회원 정보 등이 모든 공동체에게 동일하게 제공된다. 프리챌 역시 기본 메뉴는 있다.

그러나 회원들이 원하는 것을 선택해 쓸 수 있고 필요한 것은 덧붙여 사용할 수 있다. ‘열린 공간’이자 ‘스스로 만드는’ 공동체다.

현실 세계에서는 위계가 있듯이 프리챌의 사이버 공동체에서도 위계가 있다. 다른 사이버 공동체는 회원이면 다 똑같다. 원하면 가입할 수 있고 정보 열람권도 동일하다. 그러나 프리챌은 그렇지 않다.

처음 공동체를 연 사람이 최고경영자(CEO)다. 룰(회칙)도 그가 만들고 회원 가입도 선택적으로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프리챌에서는 조직과 조직간에 제휴도 할 수 있고 구성원끼리 같이 만날 수도 있다. 전략적 제휴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백제 역사연구 모임과 신라 역사 연구회가 사이버 공간상에서 같이 모여 공동세미나를 개최할 수 있다.

이처럼 프리챌은 현실의 인간 관계를 인터넷 상에서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회장이 있고 회칙이 있으며 가입도 선택적으로 되고 다른 공동체와 같이 만날 수도 있다. 휘하에 새로운 공동체를 둘 수도 있다.

고교 총동문회가 있으면 산하에 졸업연도별 동문회도 있고 또 그 속에 같은 직업을 가진 동기생,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동기생들간의 소모임이 있듯이 프리챌에서도 수직적 제휴를 통해 그대로 실현할 수 있다.
이미 서울대 상대 총동문회와 발기인이 3천명인 여성정치세력 민주연대가 입주(入住)하기로 했다. 인터넷 시민학교를 개설하겠다고 나선 NGO(비정부기관)도 있다.

제대로 구축되면 땅 넓고 사람 많은 외국에서 더 쓸모있는 개념이자 기술이다. 현실적으로 모임을 갖기가 아주 힘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리챌이 이런 개념과 기술로는 세계 최초다. 그래서 올해 하반기부터 미국과 중국·일본 등에 진출, 세계를 석권할 계획이다. “빌 게이츠가 삼국지의 조조, 손정의가 손권이라면 우리는 유비”라는 게 (주)자유와 도전의 포부다.

기업 입장에서도 써먹을 데가 무궁무진하다. 새로운 세제를 만든 기업이 소비자반응을 조사하고자 한다면 프리챌의 주부 모임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벤처 전문가인 김동재 교수(연세대·경영학)는 “기술과 개념도 탁월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강점”이라고 말한다. 전제완 사장(36)만 해도 삼성그룹 최고의 엘리트들만 모여 있는 비서실 인사팀 출신이다.

수백억원의 회사 돈을 써 가며 그룹내 20여만명 전임직원의 인사정보를 담은 시스템을 개발한 주역이다. 김용진 부사장(37)도 삼성물산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인터넷 상거래 프로젝트의 개발 주역이다. 이태신 기획이사도 마찬가지.

삼성에서 퇴사할 때 “그룹내 인터넷 최고 인재들이 다 나갔다”는 원성(?)을 듣기도 했다. 창업투자사에서 지원받지 않은 상태에서도 자본금이 32억원이나 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믿고 돈을 댔다면 한 번 기대해도 좋을 기업인 것 같다. 임직원도 41명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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