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반대하는 분들 반미인지 반FTA인지 생각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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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시는 분들은 한·미가 문제인지 FTA가 문제인지 생각을 해봐야 할 겁니다.”

 2007년 한·미 FTA 타결을 이끌었던 김현종(사진)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일각의 반미 기류에 휩쓸릴 게 아니라) 냉철히 국익을 따진다면 조속히 한·미 FTA가 비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7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한국선진화포럼 특별강연회에서다. 2004년 7월부터 3년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내며 45개 국가와 이른바 ‘동시다발적 FTA’를 추진한 주인공이다.

  그는 냉정해 보이는 인상과 치밀한 협상 전략으로 한·미 FTA 체결 당시 ‘승부사’란 별명을 얻었다. 이날도 높낮이 없는 차분한 말투로 동시다발적 FTA 전략의 배경과 한·미 FTA 비준 필요성을 역설했다.

 지난 노무현 정부의 동시다발적 FTA 전략은 한국을 단박에 FTA 중심 국가로 올려놓았다. 그가 외교통상부에 합류한 2003년까지만 해도 한국은 어느 나라와도 FTA를 체결하지 않은 상태였다. 당시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 150개국 중에 FTA를 체결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과 몽골뿐이었다. 그는 “다행히 노무현 대통령은 개방에 대해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에게 “개방한다고 해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개방하지 않으면 선진국으로 갈 수 없다”고 말했다고 했다. 김 전 본부장은 “저출산과 고령화, 일본과의 기술 격차, 중국의 기술 추격 등으로 한국 성장 잠재력은 위협받는 상황”이라며 “대외 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은 공격적으로 시장을 개방할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한꺼번에 여러 국가와 FTA 협상을 진행하며 ‘교두보 전략’을 적절히 사용했다. 미국과의 FTA 협상을 진행하기 위해 캐나다를 먼저 접촉하고, 한국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EU를 설득하기 위해 EFTA(영국·스웨덴 등 비EU국가)와 먼저 FTA 협상을 진행하는 식이다. 그는 “다른 나라가 먼저 FTA를 체결하면 한국 시장을 그만큼 빼앗긴다는 생각에 상대국이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하곤 했다”며 “한국이 워낙 발빠르게 움직이니 일본 대사들이 FTA를 막으려고 흑색선전을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 한·EU FTA 국회 비준이 협상문 한글본 오역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한·EU FTA가 빨리 비준돼야 미국 의회도 긴장하고 한·미 FTA를 빨리 비준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오역 문제에 대해 “잘못된 건 맞지만 이런 오역으로 모든 FTA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며 “빨리 고쳐서 국민에게 이해를 받고 용서를 구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타결된 한·미 FTA 추가 협상에 대해선 “자동차 등 일부 항목에서 추가 양보가 있었지만 우리로선 아직 득이 훨씬 많다”고 계산했다. 2007년 협상 당시 우리가 훨씬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협상 결과를 점수로 표현하면 6대 4 정도로 우리가 이긴 게임이라고 봤다”며 “일본·중국보다 앞서 미국과 FTA를 체결하는 것이 한국의 위상을 바꿔놓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미 FTA에 대한 일각의 반대 여론이 단순한 반미 기류에 편승한 것은 아닌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그는 지적했다. 그는 “개방 정도만 놓고 보면 한·EU FTA가 더 큰데 한·미 FTA에만 시위대가 몰리곤 했다”며 “최근 중국 선원들이 한국 해경에게 흉기를 휘두르며 난동을 피운 사건을 보며 ‘저게 미국인이었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FTA로 인한 피해를 우려하는 시각에 대해선 전기밥솥 ‘쿠쿠’와 대형마트 ‘이마트’를 예로 들며 항변했다. “유통업을 개방할 때 한국 유통업 다 망한다고 했는데, 결국 한국의 월마트·카르푸가 한국 기업에 인수당하고 이마트가 1위를 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또 한때 주부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일본 ‘코끼리 밥솥’을 가리키며 “요즘 다들 쿠쿠만 쓰지 않느냐”고 말했다. 한국 민족이 이렇게 우수한 만큼 개방에 대비해 노력하면 당하고만 있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다.

글=임미진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김현종(52)=미국 컬럼비아대 법학박사로 세계무역기구(WTO) 법률자문관과 외교통상부 통상교섭조정관, 통상교섭본부장 등을 역임한 통상 전문가다. 2007년 8월 외교통상부를 나와 주유엔대표부 대사,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부의장 등을 지냈다. 현 삼성전자 해외법무담당 사장. 2007년 한·미 FTA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협상 전략과 카리스마를 인정받았다.

사진

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삼성전자 사장(해외법무담당)
[前]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본부장

195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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