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타기 한 달 전부터 옌타이 인근서 흩어져 숨어 지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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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후 중국에서 배를 타고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 9명이 군산항 인근에 정박한 해경 경비함에서 조사 받은 뒤 차량편으로 이동하고 있다. [군산=연합뉴스]


24일 귀순한 탈북자 9명은 남성 4명과 여성 5명으로 이뤄졌다. 남성은 모두 30~40대고 여성은 30~40대가 3명이다. 7살과 15살 난 여자아이 두 명도 포함됐다. 이들 가운데는 부부와 딸 등 가족이 포함됐다. 귀순자 중 6명은 이미 가족이 한국에 들어와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의 탈북과 입국을 도운 사람은 천안 갈렙선교회 김성은(47) 목사다. 김 목사는 두 달 전 중국 현지에서 이들을 만나 입국 방법을 논의했다. 김 목사는 정확한 중국 출발지를 밝히지는 않으면서도 “옌타이(煙臺) 부근 조그만 항구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해양경찰청은 탈북자 9명 중 3명은 조선족으로 보고 있다.

김 목사는 이를 부인했다. “9명 모두 북한에서 탈출한 사람”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목사에 따르면 이들은 23일 중국에서 생선 운반선을 타고 공해상까지 이동한 뒤 24일 김 목사와 만났다. 김 목사는 군산항에서 어선을 빌려 이들을 마중 나갔다.

 김 목사는 “공해상에서 그들을 만났을 때 서로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며 “가족을 만난다는 기쁨과 2년여간의 설움, 울분이 한꺼번에 북받쳐 올랐을 것”이라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김 목사는 입국자들이 타고 온 배의 크기나 선적 등은 밝힐 수 없다고 했다. 김 목사는 “배가 크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돈을 주면 공해상까지 배를 태워주기 때문에 선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김 목사의 설명이다. 이들은 중국에서 배를 타기 전 옌타이의 주택과 아파트에 분산돼 한 달 정도 은신해 있다가 출항시간에 맞춰 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입국자 가운데는 북한을 탈출한 지 짧게는 두 달에서 길게는 2년이나 된 사람도 있다. 애초 김 목사는 30여 명의 탈북자를 입국시킬 계획이었다. 하지만 탈북자 중 상당수가 “김 목사가 우리를 다른 곳에 팔아 넘기려 한다”고 오해해 준비 과정에서 20여 명 이상이 이탈했다. 브로커와 달리 돈을 받지 않고 한국으로 보내준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는 게 김 목사의 설명이다. 김 목사는 “그들이 내 말을 믿었다면 지금 30여 명 모두가 한국 땅을 밟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김 목사는 군산에서 배를 빌리면서 해경 등 관계당국에 신고하지 않았다. 탈북자의 입국 시도가 사전에 알려지면 중국이나 북한 등에서 문제 제기를 할 가능성 때문이었다. 그는 “중국에서 출발하는 것부터 배를 타고 공해상까지 이동하는 것 모두가 불법인 줄 알았지만 이들이 무사히 입국하는 게 더 중요했다”고 말했다.

 김 목사가 탈북자들의 입국을 도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0년 처음 탈북자를 한국으로 데려온 뒤 지금까지 10여 년간 수십여 명을 도왔다. 대부분 기존에 한국으로 입국한 탈북자의 가족이다. 이번에 입국한 탈북자 9명 중 6명도 가족이 이미 한국에 들어온 경우다. 김 목사는 “탈북자의 입국을 돕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탈북자들이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어려움을 해결해줄 방법을 찾다가 “가족을 데려오자”고 결심한 것이다. 탈북과 입국을 도운 사람은 중국 현지의 조선족과 한족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 살고 있는 교포도 김 목사를 도왔다. 이들은 이번에도 탈북부터 은신, 출항까지 모든 과정을 침착하게 준비했다. 입국에 들어간 돈은 김 목사의 지인과 교회 후원자들이 마련했다. 김 목사는 “비용의 규모는 알려줄 수 없다”며 “다만 많은 사람이 탈북자들을 후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00년 군산에서 다니던 교회의 목사를 따라 두만강 유역에 선교하러 갔다가 처음 북한 주민들의 어려운 실상을 느끼게 됐고 이후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고 탈북 주민을 돕게 됐다고 설명했다.

천안=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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