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리의 서울 트위터] 노란 점자블록 따라 서울 도심 걸어봤죠 … 앗, 찻길로 들어가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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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제가 심심했었나 봅니다. 봄이 오는 것 같았고, 그날따라 그 길이 ‘노란 벽돌 길’로 보이더라고요. 도로시가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 걷던 그 흥미진진한 길. 현실에선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블록’이라 불리죠. 도로시가 된 기분으로 따라 걸어봤습니다. 랄랄라.

 아뿔싸. 걸은 지 10분도 안 돼 저의 ‘랄랄라’는 무참히 미끄러졌습니다. 울퉁불퉁하고 미끄러 운 건 물론 심지어 유도블록이 저를 찻길로 안내하더군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블록을 황색으로 만들라’고 했지만, 곳곳에 흰색 블록이 보였습니다. 주변에 깔린 돌과 색이 비슷해 저시력자들에겐 무용지물이지요.

 트위터로 제보를 받아봤습니다. “학교에서 유심히 봤어요. 계단에서 갑자기 유도블록이 사라졌어요.” “서울시에서 ‘걷고 싶은 다리’로 지정한 광진교는 미관을 위해 블록을 갈색으로 만들어 놨네요. 저시력자는 어떡하죠?” “눈감고 블록만 따라가면 벽에 부딪히는 수도 있어요.”

 서울시에 민원이 들어오면 구청에서 해결해 준다지만 실제로는 보도공사가 있을 때 ‘덤’으로 끼워주는 정도입니다. 다행히 미끄러운 문제는 나아질 것 같아요. 시가 지난달 보도 자재의 ‘미끄럼 저항 기준’을 정해 쉽게 미끄러지지 않는 소재로 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규정을 세웠거든요.

 어른들은 그러더군요. 현실과 동화는 다르다고. 하지만 그 노란 길, 모험하기 딱 좋았습니다. 도로시와 친구들은 그 길을 따라 걸으며 소원을 이뤘다는 점이 다르다고나 할까요. 취재를 위해 만났던 한 시각장애인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안내견이나 주변 사람들한테 의지해야죠. 유도블록 따라가단 자칫 저승길 가요.”

임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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