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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터카를 세차하는 사람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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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김정욱
워싱턴 특파원

#이제는 뭘 들어도 그 소리가 그 소리 같다. 북한 문제 말이다. 북한의 거친 협박도, 한·미의 대응도 도돌이표 같다.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특별대표는 3일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 목표는 정권교체가 아니라 정권의 행동변화”라고 말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기회 있을 때마다 했던 말이다. “미국의 목표는 북한의 정권교체”라고 말해야 뉴스 가치가 있다. 그런데도 한국 언론이 보즈워스 발언을 비중 있게 보도한 까닭은 북한 문제가 결코 소홀히 다룰 수 없는 바로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도적 대북지원사업을 펼치는 법륜 스님이 최근 워싱턴을 방문했다. 국무부와 싱크탱크 사람들을 만나고 와서 그가 말했다. “미국 사람들을 만났더니 연평도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더라고요. 북한의 농축우라늄프로그램(UEP) 이야기만 합디다.” 미국은 왜 연평도 대신 UEP를 말하는가. 지나간 일보다 다가올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맞는 말이다. 그러나 보다 냉정하게 살핀다면 연평도는 한국의 문제이고, 북한UEP는 미국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UEP는 미국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다. 그래서 오바마는 1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을 워싱턴에 불러놓고 UEP에 대한 공동 대응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UEP는 바로 중국 당신네 문제이기도 하다”면서.

 #워싱턴 지역엔 미국에서 우수한 학생이 몰리기로 손꼽히는 과학고등학교가 있다. 미국을 대표하는 청소년 오케스트라도 있다. 최근 수년 사이 이 두 곳에 한국을 포함한 동양계 학생들의 진입이 크게 늘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동양계 학생들의 실력이 우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벌어지면서 두 곳의 재정 상태가 악화됐다는 이야기를 교육계 관계자로부터 들었다. “백인들과 달리 동양계는 학교에 기부를 전혀 하지 않아요. 액수를 떠나 십시일반이 중요한데…. 그러니 이젠 실력이 엇비슷하면 백인들을 뽑는 것 같아요.” 이 같은 동양계 사람들에게 미국 사회는 아직도 편의를 얻는 대상일 뿐 그들의 마음 속에 있지 않다. 그곳 역시 소중한 그들 삶의 일부임에도.

 #온 세상의 손길이 일본을 향한다. 진실된 인류애의 모습이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나라가 내심 일본의 문제가 일본 그들만의 문제로 국한되길 바란다. 일본 문제가 우리 문제가 되지 않길 바란다. 여파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그들 같은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뭘 준비해야 하는지에 집중한다. 그것이 정부의 존재 이유라고 믿으면서.

 #“렌터카를 세차하는 사람은 없다.” 하버드대 총장 출신의 경제학자 래리 서머스의 말이다. 내 것과 남의 것의 차이, 소유(ownership)의 의미를 이보다 제대로 알린 표현은 없다. 우리는 우리가 소유한 것에만 신경 쓴다. 우리의 문제만이 중요할 뿐이다. 일본의 안타까운 낙일(落日)을 보면서 비정한 세상 이치를 떠올리는 것은 누구도 우리 일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두려움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아무도 일본을 대신할 수 없듯이.

김정욱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