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리뷰]아사다 지로의 '철도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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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펼치면 눈 냄새가 난다. 눈 소식이 머지않을 즈음, 난 이 책속에서 이미 올해의 첫눈을 맞은 셈이었다. 서점에서 이책을 집어들어 처음 읽었을 때 갑자기 코끝이 찡해져 한동안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그리고는 지갑을 펼쳐보았다. 책값에 조금 모자란 현금이 몇 푼. 그렇게 되돌아오며, 눈 내리는 어느날 이 책을 선물할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꿈을 꾸어도 보았다.

일본 문단에서 '가장 탁월한 이야기꾼'으로 손꼽히는 아사다 지로의 첫 소설집 '철도원'. 20대를 야쿠자 생활로 보냈던 작가의 이력이 이색적이라 더욱 유명하다. 이 책 속에 수록된 작품들이 일본에서 TV 드라마로 방영되고, 영화로도 제작되어 슬픔을 견디는 가슴들을 훈훈히 적셔주었다고 한다.

첫번째로 소개되는 작품 '철도역'은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잃고 홀로 지내는 시골마을 간이역의 철도원이 설날이 가까운 어느날, 몇해 전에 잃은 딸의 환영을 만난다는 이야기다. 그 환영은 딸의 유아기적 모습과 조금 자란 소녀의 모습, 그리고 장성한 여고생의 모습으로 3일간 나타나서 혼자 역을 지키는 쓸쓸한 아버지의 말동무가 되고는 사라진다. 그러나 그 환영이 너무도 생생하고 따스하고 사랑스러워서 그것이 환영임을 깨닫는 순간, 독자의 눈엔 맑고 깨끗한 눈물이 맺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수록된 다른 단편들 속에도 바로 이런 뭉클한 감동이 감춰져 있다.

▶ 출 판 사 : 문학동네 ▶ 옮 긴 이 : 양 윤 옥 ▶ 가 격 : 7,500원

문예중앙 최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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