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택의 창작 판소리 세바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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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연출가 겸 판소리 명창인 임진택(49)씨에게 김지하 시인은 평생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인물이다. 학창시절 외교학을 전공하던 그가 문화예술계에 발을 디뎌 오늘날 사계의 중심인물로 우뚝 설 수 있게 된 데는 김 시인과 맺은 언약이 결정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김 시인과의 인연은 또 임 씨가 판소리계에 입문, 세 편의 작품을 창작함으로써 현대 창작 판소리 분야의 독보적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임 씨가 오는 18∼23일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공연하는 창작 판소리 세바탕 「오적ㆍ소리내력」과 「똥바다」 「오월광주」가 바로 그 작품. 「오적ㆍ소리내력」과 「똥바다」는 김 시인의 담시를 원작으로 작창했으며 「오월광주」는 임씨가 직접 사설까지 썼다.

"김 시인과는 대학 연극반에서 선.후배 사이로 첫 인연을 맺었습니다. 74년 민청학련사건에 연루, 사형선고를 받은 김 시인과 호송차 안에서 만나 `나는 곧 죽을것 같으니까 네가 문화운동을 맡아달라'는 말을 듣고 약속한 것이 오늘날 제가 있게된 계기였습니다"

임 씨는 또 민청학련사건에 연루된 청년들의 한을 담기 위해 74년 김 시인의 「소리내력」에 판소리 가락을 붙여 불러 본 것이 고 정권진 선생 밑에서 판소리를 본격적으로 배우고 이후 「똥바다」(85년), 「오월광주」(90년), 「오적」(93년)의 창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시발점이 됐다 한다.

이들 작품은 70년대 한국사회 특권층의 부패상과 근대화 과정에서 파생된 사회의 균열, 그리고 한.일간 정치.경제적 관계를 풍자하거나 80년 5월 광주항쟁의 기록등을 담은 노래.

"하지만 작품의 정치적 성격이 강하다 보니 일반인은 물론 판소리 전공자들도 부담을 느끼고, 또 시대성이 점차 멀어져 감에 따라 20세기 안에 작품을 총정리한다는 차원에서 이번 무대를 갖게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를 위해 그는 이번 공연에서 이들 작품을 새롭게 꾸며 내놓는다. 한 바탕으로엮은 「오적ㆍ소리내력」(18∼19일)은 고수 이규호의 북 장단에 맞춰 부르고 「똥바다」(20∼21일)는 배우들이 함께 출연해 노래하는 연극적 요소를 곁들이며, 「오월광주」(22∼23일)에선 `광주출정가'같은 노래의 신시사이저 효과음향이 어우러진다.

정권진 선생의 막내 제자로 지난해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부문 장원을 차지한 윤진철의 「오월광주」 전승발표도 함께 열린다.

임 씨의 창작 판소리 세바탕은 내년 초 새로운 소리의 음반으로도 선보일 예정. 공연시간 18ㆍ19일 오후 4시, 20∼23일 오후 7시. 공연문의☏(02)539-0303.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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