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팩 22개 중 16개 공모가 밑돌아 … 지금이 투자 적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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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개인투자자가 기업 인수합병(M&A)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스팩(SPAC)이 3일 도입 1년을 맞는다. 초기엔 100대1이 넘는 청약 경쟁률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주가도 급등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스팩의 성적표는 낙제 수준이다.

 지난해 3월 3일 상장한 대우증권스팩을 시작으로 1일 현재 상장된 스팩은 총 22개에 달한다. 이 가운데 16개는 현재 주가가 공모가를 밑돌고 있다. 지난해 3월 12일 상장한 미래에셋스팩은 주가가 공모가 대비 2.5배까지 치솟기도 했지만 현재 상승률은 7%에 머물고 있다. 주가가 최고점일 때 매수한 투자자라면 적지 않은 손실을 보고 있는 셈이다. 22개 스팩의 평균 수익률은 -2.31%다.


 스팩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다 보니 공모나 상장이 취소·연기되는 사례도 나왔다. 지난달 17~18일 일반 공모를 추진했던 리딩밸류제1호스팩은 청약일을 이틀 앞두고 공모를 취소했다. 기관투자가의 청약이 예상에 크게 못 미쳤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상장을 추진한 하나그린스팩도 비슷한 이유로 일정을 늦춘 바 있다.

 이처럼 스팩의 성과가 부진한 것은 스팩 간 차별화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뚜렷한 M&A 이슈가 없었던 데다, 스팩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녹색산업 같은 신성장동력 관련 기업만 합병 대상으로 찾아다녔다.

 또 증권사들이 경쟁적으로 스팩에 뛰어들면서 공급도 넘쳐났다는 지적이 많다. 여기에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기업 합병 시 ‘합병가액 산정방법’을 엄격히 하기로 한 것도 부담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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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주가가 공모가를 밑돌면서 투자 매력이 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스팩의 구조상 원금 손실을 볼 가능성이 작다는 게 그 이유다. 스팩은 36개월 안에 투자 대상을 선정해 기업 인수를 마무리해야 한다. 공모자금의 90% 이상을 외부 신탁기관에 맡겨두도록 규정돼 있고, 이 돈은 3% 이상의 수익을 주는 양도성 예금증서(CD) 등의 자산에 투자된다. 스팩이 36개월 안에 합병에 성공하지 못하면 이 돈을 다시 투자자에게 나눠주는데, 외부에 맡겨 놓은 자금에 이자 등을 합치면 원금에 가까운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증권 구상모 스팩팀장은 “M&A에 성공하면 주가 상승에 따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스팩의 장점”이라며 “합병에 실패하더라도 원금이 거의 보장되는 구조이므로 공모가보다 싼 스팩은 저가 매수 관점에서 투자할 만하다”고 말했다. 증권업계에서는 스팩 도입 2년차를 맞아 장외우량기업과 증권사 간의 접촉이 본격화하면서 올해에는 구체적인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스팩은 M&A가 가시화되기 전까지는 장내 거래가 활발하지 않아 제값을 못 받을 위험이 있다. 또 증시에 상장돼 있는 만큼 주가가 전체 시장의 흐름에 영향을 받는다. 이와 함께 펀드 투자에서 펀드매니저의 능력을 보는 것처럼 스팩 투자에서는 M&A를 추진하는 스팩 운영진의 전문성 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손해용 기자

◆스팩=‘특별 목적 인수 회사(Special Purpose Acquisition Company, SPAC)’의 약칭이다. M&A를 목적으로 설립된 서류상 회사, 즉 페이퍼 컴퍼니다. 주로 기업을 M&A해 수익을 낸다.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만들고, 증시에 상장해 투자자의 환금성을 보장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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