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중국동포’ 박문요, 쿵제 제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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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하얼빈에서 자란 23세의 조선족 기사 박문요(朴文堯·사진) 5단이 세계정상에 올랐다. 23일 끝난 LG배세계기왕전(우승상금 2억5000만원) 결승 3번기에서 중국의 쿵제 9단을 2대0으로 완파하고 생애 첫 우승컵을 따낸 것. 이세돌 9단과 세계 최강의 자리를 놓고 자웅을 겨뤄 온 쿵제가 BC카드배 64강전 탈락에 이어 LG배에서도 중국랭킹 5위의 박문요에게 무너지자 “쿵제의 시대도 저물었다”는 성급한 진단이 나오고 있다. 쿵제는 지난해 세계대회 4관왕에 오르며 이세돌과 구리를 제치고 실질적인 세계 일인자 자리에 올랐었다.

 박문요의 우승을 놓고 한·중 바둑팬들의 신경전도 미묘하게 펼쳐지고 있다. 한국 쪽에서 ‘핏줄’을 내세우면 중국 쪽에선 ‘파오원야오(박문요의 중국명)는 중국인’임을 강조하는 식이다. 1988년 하얼빈에서 태어난 박문요는 1급 실력의 아버지에게 바둑을 배웠고 실력이 일취월장, 11세 때 초단 인정을 받았다. 박문요의 초년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2000년 전국소년대회에서 3위에 입상해 베이징 국가소년팀에 들어가면서 베이징으로 이주했는데 바로 이듬해 장사를 하던 아버지가 노상강도를 만나 사망하는 비극을 겪는다. 그러나 어머니는 “박문요를 꼭 일류기사로 만들어 달라”는 남편의 유언대로 중국기원 부근에 셋방을 얻어 박문요를 뒷바라지했다.

 이 상황을 전해 들은 조훈현 9단이 박문요를 자신의 기명제자로 만들기 위해 중국기원과 다각도로 접촉했다. 기명제자가 되면 공개적으로 한국의 후원자를 모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중국기원 측은 묵묵부답이었고 결국 중국에 갈 때마다 현금으로 도움을 주게 됐다. 이어서 삼성화재배 진행을 담당했던 인터넷 바둑사이트 타이젬의 박덕수 이사(당시)가 2년여 동안 생활비를 보내줬다. 박덕수씨는 삼성화재배에 박문요를 특별 초대하기도 했다. 박문요가 성적을 내고 중국리그에 선수로 활동하게 되면서 드디어 박문요 가족은 생활고에서 벗어났다. 박문요의 어머니는 이때부터 더 이상의 도움을 정중히 사양했다.

 고난을 딛고 세계 정상으로 우뚝 선 박문요는 국후 인터뷰에서 우승 직후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당연히 어머니다. 상금(2억5000만원) 전액을 어머니에게 드리겠다”고 말했다. 박문요는 9단으로 승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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