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인터넷 비즈니스 붐의 겉과 속

중앙일보

입력

10월 22일자 신문에 보도되었던 한 인터넷 관련 벤처 기업의 코스닥 등록을 위한 예비심사 청구 자료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해 매출액은 4백만원이었고 적자가 2천600만원이었던 벤처 기업의 액면가 5천원짜리 주식을 액면가의 4배가 넘는 2만원으로 매겨 예비심사를 청구한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원리에 따라 일반 투자자들이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투자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투자를 하지 않아 신규 공모가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서 주당 가격을 얼마를 매기든 공개를 하는 회사가 판단할 일이겠지만, 그 기사를 보면서 인터넷 관련 비즈니스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일반 대중의 환상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난 달 국회의 국정감사에서도 인터넷 관련 기업의 대표선수라고 할 수 있는 골드뱅크의 주가 조작설이 불거져 나와 한동안 신문지상을 시끄럽게 한 적도 있었던 것처럼, 지난 일년간 열풍처럼 몰아쳤던 인터넷 비즈니스의 환상이 사그러질 때도 된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주가 오르지만 경쟁력은 떨어져

인터넷의 미래는 의심의 여지 없이 대단할 것이다. 우리의 일상생활 구석구석을 인터넷과 관련된 기술이 메워주면서 생활을 더 효율적으로, 더 편리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포리스트 리서치의 예측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 정도는 누구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인터넷을 통한 상거래의 파괴력은 실로 엄청난 것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과 같은 인터넷 비즈니스에 대한 과도한 열풍은 적절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도 인터넷 비즈니스가 거품이다 아니다 하는 논쟁이 있지만, 소위 미국에서 잘 나가고 있다는 인터넷 관련 회사들, 예를 들어 아마존이나 야후 그리고 AOL과 같은 회사들은 확실한 사업 영역을 가지고 있고, 자기의 사업 분야에서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때문에 당장은 적자가 나거나 이익이 적지만, 그 회사들의 미래는 밝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나라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인터넷 관련 회사들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미국의 기업들과는 전혀 다른 사업 양태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인터넷 관련 기업 중에서 주가가 매우 높은 골드뱅크를 보면 이런 주장이 일말의 진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인터넷 광고를 중심 사업으로 삼고 있는 이 회사의 핵심 경쟁력이 어떤 수준에 있는지는 광고 매출액이 얼마인지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는 또 다른 회사의 매출액을 봐도 마찬가지다. 과연 이 회사의 핵심 경쟁력이 어디에 있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인터넷 비즈니스에 필요한 ‘기업가 정신’

이런 풍조가 만연하다 보니 벤처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 마음속에 벤처기업의 핵심인 기업가 정신이라는 것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진 채, 벤처투자가에게 잘 보여 몇 배 비싼 값에 주식을 팔 생각만 가득한 것 같다.

고객을 만나고, 시장을 읽고, 엔지니어들과 함께 기술을 개발하는 데 들이는 시간은 점차 줄어들고, 금융관계자와 변호사를 만나는 시간이 점차 많아져서 벤처회사 경영자인지 금융 브로커인지 알 수 없는 상황도 벌어진다. 회사가 핵심 경쟁력을 갖고 미래를 가꾸어 나가는 것과 반대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은 누구도 알 수 있다.

우리 나라의 정책은 벤처기업을 육성해서 재벌 기업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대안으로 삼는 것이다. 지금처럼 벤처기업들이 방향을 잃고 표류한다면 앞으로의 세상도 지금과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고, 진정한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노력하는 많은 벤처 기업가들의 노력이 이런 사람들 때문에 좌절될 지도 모른다.

어쨌든 가장 확실한 것은 인터넷의 미래는 대단히 밝을 것이라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진정한 기업가 정신만이 이런 인터넷 비즈니스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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