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의 발자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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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급 투수' 선동열은 63년 1월 10일, 전남 송정읍에서 선판규, 김금덕씨 사이에서 2남2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송정 동국민학교, 광주 무등중학교를 거쳐 78년에 야구의 명문 광주일고에 입단하였고 80년에는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MVP에 올랐으며 같은 해 봉황대기 1회전에서는 경기고를 상대로 노히트노런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81년 고려대에 입단한 후 7월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팀의 우승을 이끌며 MVP를 차지, 일약 한국 야구계의 스타로 발돋움 했고 세계적인 선수로 알려졌던 계기는 82년 서울에서 열렸던 제24회 세계야구 선수권 대회이다. 이 대회 결승전에서 숙적 일본을 상대로 완투승을 거두며 팀 우승을 견인, 최우수선수상, 최다 승리 투수상을 차지하면서 한국야구팬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줬다.

선동열이 국보급으로 불리기 시작한 때는 85년 프로에 입단한 후이다. 우여곡절끝에 해태에 입단한 선동열은 7월 2일 데뷔전인 대 삼성전에서 5-2의 패배의 쓴 잔을 마셨으나 7월 11일 대청보전에서 데뷔 첫 승을 거두었고 그 해 7승 4패의 성적과 1.70의 방어율로 방어율 왕에 오르는 것에 만족해야 했지만 86년에는 24승, 방어율 0.99를 기록하며 두 부문 1위를 차지하며 시즌 MVP를 차지하였고 데뷔 후 처음으로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하였다. 관심을 모으던 최동원과의 맞대결에선 1승씩을 주고 받았다.

선동열은 국내프로야구에서 11년을 뛰며 통한 146승 40패 132세이브에 68완투승, 29완봉승을 기록하였고 방어율은 1.20의 '꿈의 방어율'을 기록하였고 통산 1647이닝에 탈삼진 1698개에 피홈런은 28개에 불과하다. 선동열이 있는 동안 소속팀 해태 타이거스는 6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 했다.

한국야구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96년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스에 입단한 선동열은 일본프로야구에서 96년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5승 1패 3세이브에 5.50의 방어율은 '국보급' 투수라는 말을 무색케 했다.

하지만 97년부터 1승 38세이브를 기록하며 구원부문 2위에 올랐고 98년에는 3승 29세이브, 99년에는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1승 28세이브를 기록하였다.

일본에서의 통산성적은 10승 4패 98세이브에 방어율 2.70, 탈삼진 228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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