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은 특대형 모략극” 북, 자리 박차고 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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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고위급 군사회담 개최를 위한 판문점 실무회담이 결렬됐다. 우리 측 수석 대표인 문상균 국방부 북한정책과장(대령급)은 9일 “남북은 전날에 이어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이틀째 회의를 열었지만 합의 없이 종료했다”며 “북측이 일방적으로 철수하는 바람에 다음 회담 일정도 잡지 못했다”고 밝혔다.

 남북은 오전 10시부터 50분간 회담을 한 데 이어 오후 2시20분 회담을 속개했으나 12분 만에 끝났다. 북측 대표단은 회담 직후인 오후 2시50분 군사분계선을 넘어 되돌아갔다. 남북 양측은 이날 고위급 군사회담의 의제와 수석대표의 급에 대한 견해 차를 좁히지 못했다. 전날 세 차례나 정회(停會)를 거듭하면서 시종 진지하고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던 북한은 이날 정회 후 북측 지역으로 돌아가 점심식사를 하고 온 뒤 태도가 돌변했다.

문 대표는 “우리 정부는 ‘천안함 폭침 사건과 연평도 공격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 및 추가 도발 방지 확약을 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양보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공격 문제를 본회담에서 다루자’로 의제를 수정했으나 북한은 ‘천안호 사건과 연평도 포격전, 쌍방 군부 사이 상호 도발로 간주할 수 있는 군사적 행동을 한꺼번에 다루자’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말했다.

 9일 오후 회담에서 북한의 천안함 관련 입장은 확연히 드러났다. 험악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은 이선권 대좌는 “귀측 입장에 변화가 있느냐”는 우리 측 질문에 “없다”고 답한 뒤 “천안호 사건은 우리와 무관하다. 미국의 조종하에 남측의 대북 대결정책을 합리화하기 위한 특대형 모략극이다. 연평도 포격은 남측이 연평도를 도발의 근원지로 만들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우리 측은 “고위급 군사회담에서 북측이 천안함·연평도에 대해 밝히겠다는 내용이 명백히 드러났다”며 “동족의 머리 위에 포탄을 발사해 민간인이 사망하고 막대한 재산피해를 발생하게 하고 도발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다.

 다음은 문 대표의 일문일답.

-회담 분위기는.

 “어제부터 오전까지 실무적 절차로 차분히 진행됐다. 오후에는 북한이 작심한 듯 격앙된 표정으로 천안함과 연평도에 대한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왜 태도가 돌변했다고 보나.

 “북한 입장에서 대화는 어렵다고 본 것 같다.”

-어제도 천안함·연평도 와 관련된 얘기를 했는가.

 “일절 없었다. 그 문제는 고위급 회담에 가서 밝히겠다고 해왔다. 오늘 오후 북측의 진정성을 확인했다. 기존 입장과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북한이 조급해 한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했나.

 “오전 회담에서 불쾌하다고 했다. 기자들에게 그렇게 설명하면 좋지 않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누가 먼저 일어섰나.

 “명확한 입장 차를 확인한 뒤 북측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자신들의 주장을 강조하며 더 이상 대화할 수 없다고 파일을 덮고 나갔다.”

 회담을 지켜본 군 당국자는 “이 대좌는 회담을 결렬시키라는 훈령을 받고 온 것으로 보인다”며 “본회담이 열리더라도 북방한계선(NLL) 무력화를 목표로 천안함·연평도 책임 문제를 희석하며 얼렁뚱땅 넘어가려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회담 결렬로 향후 군사 실무회담은 전화통지문을 통한 협의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시간이 걸린다는 얘기다.

그러나 북한이 예비회담에서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에 대해 사과할 뜻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만큼 고위급 회담이 열리더라도 우리 측이 요구한 ‘책임 있는 조치’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들이다. 정부는 대화의 문은 열어두되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에 대한 원칙적 입장을 바꾸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우리 측이 제기한 의제와 수석대표급을 북한 측이 수용한다면 언제든지 고위급 군사회담에 나갈 수 있다”고 밝혔다.

 북측의 군사 실무회담 결렬에 대해 대북 전문가들은 의외라는 반응이다. 후계체제 확립과 2012년 강성대국을 목표로 북한이 정한 시간표와 맞지 않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서재진 통일연구원장은 “북한의 내부 상황이 6자회담이나 북·미 대화를 포기할 정도로 녹록지 않다”며 “이를 위해선 남북대화를 해야 하는데, 이번 협상 결렬은 자신의 의도대로 협상을 끌고 가려는 치고 빠지기식 김빼기 전술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수정·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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