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장관
“경찰이 백날 도둑을 지키면 뭐하나. 집주인이 도둑을 잡을 마음이 없는데….”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27일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구제역 관련한 논의를 하다가 한 발언이라고 한다. 일부 축산농이 방역에 소극적이란 취지의 비판이었다. 윤 장관은 또 “구제역 보상비로 예비비까지 동이 날 지경”이라며 “현실 보상을 해주기 때문에 일부 농가에서 도덕적 해이가 문제가 되고 있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자 또 다른 참석자가 “지금 몇 십억, 몇 백억 보상받은 농가들도 있다”며 “그 사람들은 살처분 해놓고 베트남에 골프 하러 나갔다더라”고 맞장구 쳤다.
이런 발언에 대해 한 참석자는 “KBS가 축산농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보도를 했는데 그 내용을 전하다 나온 말”이라고 해명했다. 전날 KBS가 “경북 안동의 축산농장 주인 3명이 베트남 여행을 다녀와 구제역을 옮긴 것으로 추정되나 150억여원의 보상금을 받게 됐다”고 보도한 걸 인용하면서 한 얘기란 것이다.
그러나 당장 당내에서부터 “정부가 축산농에게 책임을 미룬 듯해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배은희 대변인은 “자칫 정부가 잘못한 것 없고 축산 농가들이 소홀했다며 책임을 전가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지만, 최선을 다해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농가가 대부분이고 기업형 농가 중 일부가 문제라는 취지였다”고 했다.
한편 두 시간 동안 진행된 고위 당정은 지난해 10월10일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회의였지만 분위기는 냉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에서 구제역 확산과 물가·전셋값 상승 등을 놓고 정부에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구제역 확산을 막지 못한 데 대해서는 ‘책임론’까지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홍준표 최고위원은 “정권 무능으로까지 국민에게 비치는데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며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지목하기도 했다.
◆유정복 장관 "매뉴얼에 문제 있었다”=유 장관은 이날 구제역 대처용 표준행동요령(매뉴얼)과 관련, “매뉴얼대로 진행했는데 매뉴얼에 문제가 있는 부분이 있었다”고 공식 시인했다(본지 1월 26일자 1, 24면). 최선을 다했지만 만들어진 지 10년도 넘은 매뉴얼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확산을 막는 데 실패했다는 취지의 해명도 했다.
실제 방역당국은 구제역이 잠복기 때 넓은 지역으로 전파됐을 가능성에 대한 대책이 없고 백신 사용법도 애매하게 규정한 매뉴얼을 곧이곧대로 따르다가 전국 확산이라는 참사를 맞았다. 지금까지 272만 마리 이상의 가축이 땅에 묻혔고 경제적 손실은 3조원에 이른다.
임미진·백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