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덴만 여명’ 피랍선원 전원 구출] 희생자 없는 퍼펙트 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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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 해적을 소탕하고 납치된 삼호주얼리호 선원을 구출한 청해부대 최영함이 지난해 7월 27일 동해상에서 열린 한·미 연합훈련에서 5인치 포를 발사하고 있다. [뉴시스]

우리 해군이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삼호주얼리호 선원 구출 작전에 나선 것은 한국 상선 납치를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 표명이다. 2006년 이래 삼호주얼리호를 포함해 모두 9건의 상선 피랍사건이 발생하면서 한국이 해적의 봉이 돼버린 상황을 반전시키겠다는 정부의 인식이 깔려 있다. 우리 상선이 해적에 피랍되면 정부와 선주 측이 협상에 나서 선원의 몸값을 지불하고 석방시키는 식의 악순환 고리를 끊겠다는 생각이다. 사실상 소말리아 해적을 상대로 전쟁을 개시한 셈이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삼호주얼리호 피랍 직후 비보도 브리핑에서 “완전작전이란 희생 없이 작전을 성공하는 것이지만 만약 작전이 실시됐을 때는 경우에 따라서는 부분적인 희생도 감수해야 할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차제에 본때를 보여줘야 한국 선박에 대한 해적의 인식을 바꿀 수 있다고 일찌감치 판단한 듯하다. 우리 선박이 만약에 다시 해적에 납치되더라도 이번과 마찬가지로 군사작전이 진행될 전망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21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21일 삼호해운 손용호 대표(왼쪽)가 부산 중앙동 회사 사옥에서 정부와 군당국의 선원 구출 작전에 감사한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부산=송봉근 기자]

 우리 군의 이번 작전은 군사적 측면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우리 군함이 공해상에서 단독 작전을 펼치기는 처음이다. 더구나 완벽 작전(Perfect Operation)이었다. 소말리아 인근 아덴만에 진출해 있는 연합함대사령부의 일부 지원을 받았지만 사실상 독자적 군사작전을 벌였다. 비록 테러단체에 준하는 해적을 상대로 한 것이지만 중견국가로서의 해군력을 투사(投射·projection)한 셈이다. 불법 행위에 대해 단호한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중견국가에 걸맞은 국격을 고려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지난해 북한에 의한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겪으면서 군과 우리 사회에 정착되기 시작한 ‘잘못된 행동에는 보상이 뒤따른다’는 원칙의 집행이기도 하다. 장소가 무의미해지고 있다. 정부는 해상 교통로(Sea lane)의 안전 확보도 염두에 둔 듯하다. 우리 상선의 피랍 지점들은 무역입국인 한국엔 곧 생명선이다. 공해에서 안전한 수송로를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국제사회에 대한 메시지도 무시하기 어렵다. 정부는 그동안 인질석방 교섭에서 “테러단체와 협상하지 않는다”는 ‘국제 표준’을 따르지 못했다. 물론 구미 국가 모두 이 원칙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질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국내 여론에 끌려다녔고, 결국 몸값을 지불하고 인질을 석방하는 것이 관례로 굳어졌다. 2007년 아프가니스탄 내 탈레반에 붙잡힌 분당 샘물교회 신도를 석방시키는 과정에서 국정원까지 나서 협상을 진행한 것은 대표적 사례다. 그런 점에서 이번 구출작전은 한국인이 외국 테러단체나 해적에 인질로 잡혀 있는 사건 해결 방식에서 일대 전환점이기도 하다.

글=허진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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