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이웃사랑 불 지피는 ‘사랑의 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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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얼굴 없는’ 기부자가 연말을 훈훈하게 하고 있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면서 불우이웃을 위해 기증을 실천한 덕분이다.

 “띠리리링.”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23일 오후 4시쯤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사무소로 한 중년 남성이 전화를 걸어왔다. “내일 택배로 쌀이 배달될 겁니다.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해 주십시오.” 이 말만 남긴 채 전화는 끊겼다. 다음 날인 24일 오전 면사무소로 20㎏짜리 안성쌀 22부대가 배달됐다.

 안성시 일죽면사무소에서 연말마다 벌어지는 일이다. 이 남성은 2005년부터 6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면사무소로 100만원 상당의 쌀을 보내고 있다. 또 방초리·고은리 등 일죽면 6개 마을 경로당에도 20㎏짜리 쌀 2부대씩을 10년째 전달하고 있다.

 면사무소 직원들은 이 남성을 ‘얼굴 없는 기부천사’라고 부른다. 그의 기부 조건은 하나다. ‘내 신원을 알려고 하지 말고 보낸 쌀을 기초생활수급자를 제외한 불우 노인에게 전달해 달라’는 것이다.

 면사무소가 쌀을 배달한 택배회사를 통해 기부자의 신원 파악에 나섰다. 그러나 택배회사는 “발송자가 신분을 절대 노출되지 않도록 비밀로 해 달라고 했다”며 알려주기를 거부했다. 백방으로 수소문한 결과 이 남성이 일죽면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라는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그는 “내가 무슨 큰 일을 했다고 신원을 알려달라는 것이냐”며 이름 알려주기를 거부했다.

 일죽면사무소 장미애 사회복지 담당은 “전달받은 쌀은 기부자의 뜻에 따라 기초생활수급자를 제외한 불우이웃들에게 골고루 전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23일 오후 3시쯤 경기도 평택시 서정동 주민센터로 수수한 옷차림을 한 50대 중반의 여성이 찾아왔다. 이 여성은 사회복지 담당 직원에게 “우리 동에 가정형편이 어려운 분이 많으냐? 도와드리고 싶으니 30명만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는 “주민센터가 평소 홀몸 노인에게 안부전화를 하고 효도관광 사업 등 불우이웃돕기 사업을 하는 것을 눈여겨봤다”며 “나도 돕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주민센터 직원이 연락처와 이름을 물었지만 이 여성은 “알 필요 없다”며 자리를 떴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직원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형편이 어려운 홀몸 노인과 소년소녀가장의 주소를 적어 다음 날 주민센터를 찾아온 이 여성에게 건넸다.

 그리고 27일 오전부터 주민센터로 문의 전화가 쏟아졌다. “어제 저녁 집으로 어떤 중년부인이 쌀 20㎏짜리 한 부대를 가져왔는데 감사 인사라도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주민센터 측이 확인한 결과 이 여성은 명단에 적힌 30명의 집에 20㎏짜리 쌀 한 부대씩을 보냈다. 120만원 상당을 기부한 것이다.

서정동 주민센터 오진후씨는 “이 여성이 ‘앞으로도 불우이웃이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더욱 관심을 가지고 배려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자신도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며 “이런 분들 때문에 우리 사회가 따뜻하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안성·평택=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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