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의 '투기債 과장광고'

중앙일보

입력

정부가 지난 19일 발표한 투기등급 채권 전용펀드의 이름을 놓고 해프닝이 있었다.

투기등급 채권은 부실우려가 높기 때문에 보통 '쓰레기' 라는 의미의 정크 본드(junk bond)라고 부른다. 따라서 신상품의 이름도 '정크 본드 펀드' 쯤으로 부르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이헌재(李憲宰)금융감독위원장은 "국내에선 장래성있는 중소.중견기업의 채권도 무조건 투기등급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투기등급 채권을 모두 정크 본드로 볼 수는 없다" 며 신상품은 '그레이(grey.회색)펀드' 로 불러달라고 주문했다. 흰색(정상)과 검정색(부실)의 중간쯤으로 해석해달라는 뜻이었다.

여기까지는 봐줄 만했다. 그런데 정작 19일 금융감독원은 신상품을 발표하면서 '고수익채권 전용펀드(high yield fund)' 라는 이름을 갖다 붙였다.

투기등급 채권은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도 있지만 부실 위험도 그만큼 큰 채권이다.

그런데도 고위험의 측면은 슬그머니 빼버리고 고수익이란 말만 앞세워 놓았다는 얘기다.

그래놓고 같은 보도자료의 한쪽 구석에는 '펀드 광고시 투신사들이 고수익채권 전용 펀드의 위험을 충분히 설명토록 의무화' 라는 문구를 넣어 놓았다.

이 보도자료를 본 투신업계 한 간부는 "금감원이 앞장서서 고위험성을 의도적으로 덮어놓고 투신사더러는 위험성을 알리라니 도대체 어떻게 하란 얘긴지 모르겠다" 고 꼬집었다.

정부로선 위험성보다는 높은 수익성이 부각돼 신상품으로 돈이 몰렸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정부의 태도가 원금도 손해볼 수 있는 실적배당형 상품을 고정금리형인 것처럼 팔아온 투자신탁이나 은행의 예전 행태와 다를 게 뭐가 있을까.

李위원장은 20일 국제증권위원회기구 행사에 참석해 "투신상품.보험상품.은행신탁상품 등 실적배당상품을 높은 수익률이 고정된 것처럼 광고하는 행위를 못하게 하겠다" 고 밝혔다.

정부의 이런 뜻이 금융기관들에 제대로 전달되게 하자면 정부부터 아전인수(我田引水)식 홍보 관행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정경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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