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초등교 세워준 베트남 … “한국군 잔혹” 새긴 위령비 문구 현 주민들 스스로 지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라오스 북부 도시 루앙프라방에 있는 수파누봉 국립대학 정문(위 사진). 한국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이 지원해 건립한 이 대학은 라오스 북부 8개 주 엘리트 교육의 요람이다.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한 지 1년이 지났다. 원조를 받았던 나라가 DAC 회원국이 된 것은 최초다. 한국의 성장 경험을 바탕으로 한 ‘한국형 원조’는 개발도상국에서 각광받고 있다. 선진국과는 차별화된 ‘눈높이 원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본지는 한국형 원조 현장인 베트남과 라오스·도미니카공화국을 둘러봤다. 원조는 개발도상국 경제 발전에 도움을 주는 한편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높이고 있었다.

지난 8월 라오스를 방문한 한국의 대학사회봉사협의회 소속 여대생들이 루앙프라방대 학생들과 음식물 쓰레기를 이용한 비누 만들기에 관해 논의하고 있다(위쪽). 실제 제작한 재활용 비누(아래쪽). [루앙프라방=정재홍기자], [조영신 루앙프라방대 교수 제공]

 지난달 말 동남아시아 내륙 국가 라오스 북부의 고대 도시 루앙프라방. 수도 비엔티안에서 메콩강을 따라 약 400㎞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세계 최빈국에 속하는 라오스 북부의 교육 중심지다. 수파누봉국립대학이 라오스 북부 8개 주의 젊은 인재 4400명을 교육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졸업생 취업률이 90% 안팎이어서 북부 지역 인재들이 선망하는 대학이다.

 이 대학은 한국수출입은행이 운영하는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이 2300만 달러(약 260억원)를 지원해 2007년 종합대학으로 확대 개편됐다. 비엔티안의 라오스국립대학에 이은 제2의 종합대학이다. 연리 1%에 10년 거치 30년 상환 조건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한국의 소양강댐 개발 경험을 살려 라오스의 풍부한 수력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수력발전론’ 과목을 개설하는 등 한국의 성장 경험이 교육 과정 곳곳에 녹아 있다.

 지난달 말 방문했던 수파누봉대 강의실은 수업을 준비하는 학생들로 북적거렸다.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하자 “한국 드라마와 한국 제품 최고”라는 학생들의 응답이 들렸다. 국제경영 4학년생인 아놀룩 불랴폴은 “라오스도 한국처럼 빠르게 경제 발전을 일궜으면 한다” 고 말했다.

 베트남 중북부 도시 빈은 한국이 지어 준 한베산업기술대학이 명물로 통한다. 응웬쥐남 총장은 “빈의 두 가지 명물은 호찌민 생가와 한베산업기술대학”이라고 말했다. 베트남 노동부는 베트남의 1500여 개 직업훈련원 중 한베산업기술대학을 최고로 꼽았다. 설립 과정에서 한국이 2000년 750만 달러를 지원했던 이 대학은 졸업생의 95% 이상이 취업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이 경제 성장 과정에서 산업기술인력을 길렀던 경험을 대학 설립에 녹였다. 대학 덕분에 빈에는 고층 건물과 대형마트가 들어서는 등 경제가 활성화되고 있다. 빈 시민들은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등 간단한 한국말을 할 줄 안다. 베트남의 다른 지방 정부도 한베산업기술대학과 같은 직업학교를 세워 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 박성환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는 “한국의 원조가 베트남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고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크게 향상시키고 있다” 고 말했다.

 베트남 중부는 원조 덕분에 한국 이미지가 우호적으로 바뀐 경우다. 이 지역은 베트남전쟁 때 한국의 청룡·맹호·백마부대 등이 격전을 치러 한국을 적대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2000년 초 한류 열풍이 베트남을 휩쓸 때도 중부는 잠잠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2001~2002년 200만 달러를 들여 중부 5개 성에 초등학교 40곳을 세웠다. 당시 주민 반감이 거세 미리 베트남 재향군인회에 취지를 설명하고 한국인의 신변 보호를 요청해야 했을 정도다. 이런 적대감은 학생들이 학교에 다니면서 누그러졌다. 지원받은 한 학교의 운동장에 세워진 베트남전 위령비에는 현지 주민 합의로 한국군의 잔학상을 기록했던 문구가 지워졌다. KOICA는 지난해 56만 달러를 투입해 이들 학교를 개·보수했다.

 그러나 우리의 원조 규모는 아직 빈약하다.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는 지난해 1조392억원으로 국민총소득(GNI) 대비 0.1%에 그쳤다. 한국이 1년 전 가입했던 OECD의 DAC 23개 가입국 중 꼴찌다. DAC 평균은 0.31%다. 한국은 개도국과의 경제 협력 강화와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ODA 예산을 크게 높일 계획이다. GNI 대비 ODA 비중을 2012년 0.15%, 2015년 0.25%까지 늘릴 방침이다.

루앙프라방(라오스)·하노이(베트남)=정재홍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