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국고지원단체 선거 때 모임 금지, 위헌 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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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법원이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이하 바살협) 등 국고 지원을 받는 단체의 선거기간 중 모임 개최 불가를 규정한 공직선거법 조항에 위헌 소지가 있다며 직권으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했다. 이에 따라 선거기간 중엔 사실상 모임을 열 수 없도록 돼 있는 향우회·동창회 등에 대해서도 위헌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전주지법 정읍지원은 10일 “6·2 지방선거 당시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모씨 등 사건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했다”고 밝혔다. 법원은 “관련 법조항이 모임의 목적과 관계없이 무조건 처벌하도록 함으로써 형벌의 책임주의에 어긋나는 등 위헌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읍지원은 헌재 결정이 나올 때까지 해당 재판 진행을 잠정 중단했다.

 정읍지원에 따르면 바살협 정읍 협의회장인 한모(68)씨와 사무국장 오모(68)씨는 지난 5월 시내의 한 음식점에서 회원 30여 명과 함께 월례회의를 개최한 혐의로 기소됐다. 선거법상 ‘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국민운동단체로 국가 또는 지자체 보조를 받는 곳은 선거기간 중 어떤 모임도 열 수 없다’(103조2항)는 규정을 어긴 혐의였다. 이 사건을 담당하는 재판부는 바살협 월례 모임 자리에서 선거에 영향을 미칠 만한 발언 등이 나오지 않았는데도 단지 모임을 열었다는 이유만으로 기소된 부분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선거법 103조 2항의 위헌 소지로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우선 바살협 등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목적과 무관하게 모임만 열면 자동으로 처벌하도록 한 것은 ‘책임이 없으면 처벌을 못 한다’는 형벌의 책임주의에 어긋난다는 점이다. 우리 법질서상 어떤 비난의 소지도 없는데 처벌할 수 있는 맹점이 있다는 것이다. 또 ▶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하고 ▶국고 지원을 받지 않은 단체들과의 차별적 단속으로 평등권도 침해하고 있다고 제청 사유를 밝혔다. 이 같은 법원의 위헌제청에 대해 검찰은 우려를 나타냈다. 검찰은 국고 지원 단체는 공공성 등을 고려해 준국가기관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일반 단체와 다른 규정을 적용받아야 한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또 이번 제청이 바살협뿐 아니라 여러 단체들의 모임에 대한 헌법소원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향우회 등 모든 모임의 성격을 일일이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에 선거기간 중에는 이 같은 모임을 사실상 금지하고 있다” 고 말했다.

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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