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말 많은 한·미 FTA, 그렇게 중요한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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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최근 뉴스를 점령했던 이슈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입니다. 그런데 협상 결과를 놓고 불꽃이 튑니다. ‘추가협상이냐 재협상이냐’부터 “안보 때문에 핵심 이익을 내줬다” “한·미가 공평히 결과를 나눠 가졌다”는 주장까지 여러 말이 어지러이 오갔지요. 틴틴 여러분, 어른들이 편 갈라서 싸우는 것으로 치부하기엔 사안의 중요성이 큽니다. 나중에 10년, 20년이 지난 뒤 틴틴 여러분이 사회에 뛰어들 때가 되면 한·미 FTA의 영향은 결코 적잖을 겁니다. 차분히 한·미 FTA의 의미를 짚어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먼저 FTA에 대해 알아볼까요. FTA는 Free Trade Agreement의 첫 글자를 딴 겁니다. 문자 그대로 ‘자유무역협정’이란 뜻이지요. 무역의 자유란 무슨 말일까요. 각 나라는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제도를 두고 있습니다. 발전이 더딘 산업을 키우기 위해 지원금을 주기도 하고, 다른 나라의 상품이 밀려들어 와 자국 산업이 타격을 받는 것을 막기 위해 ‘관세’라는 것을 매기기도 하지요. 이런 것들을 통틀어 ‘무역장벽’이라 일컫습니다. 무역장벽을 높게 쌓고,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려는 경향을 ‘보호무역’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무역이라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겁니다. 한국은 수출에 의존해 먹고산다는 얘기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실제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무역의존도는 82.4%입니다. 땅은 좁고, 자원은 없으니 우수한 인력을 바탕으로 좋은 제품을 만들어 팔아 경제가 발전한다는 의미지요. 한국은 자동차와 정보기술(IT) 등 첨단분야에서 경쟁력이 있습니다. 올해 세계 7위의 무역 대국이 될 전망이고요. 그러니 “우리 문턱을 낮출 테니, 당신 문턱도 낮춰 자유롭게 교역할 수 있도록 하자”는 건 필요한 전략이죠. 한국이 여러 나라와 FTA를 적극적으로 체결하려는 이유를 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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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 FTA도 이런 이유에서 추진됐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FTA 추진 로드맵’을 만든 이후 4년여간의 논의 끝에 2007년 4월 타결됐지요. 당시 내부적으로 ‘남는 장사’라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실제 FTA가 발효되면 향후 10년 동안 실질 GDP가 6.0%(누적치) 늘어나고 일자리 34만 개가 새로 만들어질 거란 분석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티격태격하는 사이, 미국에서 한·미 FTA에 대한 문제 제기가 시작됐습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공개적으로 “한·미 FTA는 현명한 협상이 아니다”며 다시 논의할 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했습니다. 쇠고기와 자동차가 불만의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2008년 수입위생조건을 통해 한국은 미국의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만 수입한다’고 양국이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모든 연령대의 쇠고기를 수입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자동차의 경우 “미국은 수십만 대의 한국산 자동차를 사는데, 한국은 고작 수천 대의 미국차를 사는 정도”라며 무역 불균형을 주장했지요.

실제 한국차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2007년 4.8%에서 2008년 5.1%, 2009년 7.1%, 올해 1~10월 7.9%로 매년 늘어나고 있습니다.

 올해 6월, 재논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11월까지 FTA에 대한 양국 현안을 해소한 뒤 몇 달 안에 의회에 비준동의안을 제출하겠다”고 시한을 못박았습니다. 이후 넉 달(10월 말) 만에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론 커크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났습니다. 이때부터 두 나라 통상장관들의 지루한 줄다리기가 시작됐습니다.

 견해차를 좁히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두 나라 정상이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앞서 마무리 짓자고 합의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미국의 요구 수준이 높았기 때문이죠. 미국은 자동차 분야 FTA의 핵심조항인 관세 양허안을 다시 손볼 것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애초 두 나라는 미국에 수출하는 한국산 자동차에 붙는 관세를 3000㏄ 이하는 즉시 철폐, 3000㏄ 초과는 3년 후 철폐하자는 데 합의했습니다. 이를 바꾸자는 거였지요. 쇠고기에 대해서도 서류 더미를 쌓아놓은 채 수입을 확대하라고 압박해 왔습니다. 결국 논의는 시한을 넘겼고, 이달 초에야 협상 타결을 선언할 수 있었습니다.

 ◆자동차 양보, 길게 보면…=추가협상 결과는 ‘자동차 일부 양보, 양돈업과 의약업계 이득’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와 관련해선 관세 철폐 기간을 연장하기로 한 게 가장 큰 특징입니다. FTA 발효 후부터 미국은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2.5%)를 4년간 유지한 뒤 철폐하기로 했습니다. 전기차의 경우 관세 철폐 기간이 오히려 짧아졌습니다. FTA 발효 후 9년간 균등 철폐하기로 했던 전기자동차의 경우 한국은 발효일에 관세를 절반(4%)으로 낮추고, 두 나라 모두 4년간 균등 철폐하기로 했습니다. 전기차 상용화를 앞둔 미국의 수출 확대 전략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이 밖에 수입이 급증할 경우 관세를 이전 수준으로 돌릴 수 있도록 한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 조치) 조항을 새로 만들었고, 자동차 안전 기준과 환경·연비 기준도 미국의 요구를 들어줬습니다. 이번 추가협상만 놓고 봤을 땐, 돼지고기(냉동 목살 등 관세철폐 시기 2016년으로 연기)와 의약품(복제의약품 시판허가 관련 특허 연계 의무 3년 연기) 등에서 이득을 봤다고 해도, 우리가 양보한 측면이 큽니다. 애초 미국의 요구로 추가협상이 시작된 만큼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지요.

 그러나 ‘두 나라 간의 이견으로 FTA 비준이 지연되는 것보다는 훨씬 이득’이라는 게 정부 입장입니다. 실제 한국은 미국과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유럽연합(EU)을 연결하는 FTA 네트워크를 구축한 유일한 나라가 됐습니다. 한국이 FTA를 체결한 국가들은 전 세계 GDP의 61.0%, 교역의 46.2%, 인구의 39.7%를 차지합니다. 또 한국과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는 중국·일본·EU에 앞서 세계 최대 규모인 미국 시장을 선점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미국 수입시장은 지난해 기준 1조6000억 달러로 중국과 일본의 수입시장 규모를 합한 것과 비슷합니다. 일본에선 벌써 “한국이 한·미 FTA에 합의해 일본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미국과 유럽에 수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아사히 신문)고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안보 효과도 기대됩니다. 북한의 연평도 공격에서 보듯, 한국을 둘러싼 안보 여건은 경제에 위협이 됩니다. 한·미 FTA가 한·미 동맹을 더욱 공고히 할 거란 얘깁니다. 시장이 가까워지면, 사람이 가까워지고, 양국 간의 경제·정치적 협력관계도 커지게 마련입니다. 실제 우리와 FTA에 합의하고 국회 비준을 기다리고 있는 EU는 북한 도발 시 가장 강경한 비난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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