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kg급 금메달 김우용 키워낸 이건환감독

중앙일보

입력

“보약 한채 제대로 먹지 못한 녀석이….”
지난 10일 새벽 터키 레슬링자유형세계선수권대회 54㎏급에서 금메달을 딴 김우용(28·평창군청)
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이건환(42·평창군청)
감독은 감정이 복받쳐 끝내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김에게 레슬링을 가르친지 올해로 15년.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김은 결승에서 우즈베키스탄 아키로프를 4-0으로 꺾었다.김의 금메달은 박장순이후 6년만의 쾌거였다.

이건환·김우용.이들 사제지간의 만남은 운명이었다.84년 겨울 첫눈이 펑펑 쏟아지던날.이감독은 새벽길에 신문뭉치를 안고 눈길을 달리는 한 아이를 발견했다.순간 녀석을 불러세웠다.힘깨나 쓸만한 놈이란걸 한눈에 알수 있었기 때문이었다.레슬링 선수는 타고나야 한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알고 있었다.

당시 평창중고 레슬링코치로 있던 이감독은 평창초등 6년이던 김이 중학교에 진학하자 레슬링을 가르치기 시작했다.키는 작지만 타고난 골격이 ‘역사(力士)
’였다.게다가 몸놀림이 비호같았고 심성은 착하기만 했다.그런 그를 혹독하게 조련했다.산악지방인 평창의 험한 노성산을 매일 오르내렸다.그러던 어느날.“우용이가 없어졌다”는 소리를 들었다.읍내를 다뒤졌다.자식을 잃은 것처럼 허탈했다.며칠후 친구집에 숨어있던 그를 찾아냈다.

“힘들고 배가 고파서 도망갔다”는 말을 듣고 둘은 뒤엉켜 울었다.가출은 고된 훈련이 아니라 가난때문이었다.선천적 장애인인 부친,병석에 누운 어머니,토굴같은 집.그 후 이감독은 그를 친자식처럼 보살폈다.그러나 훈련만큼은 더 혹독하게 시켰다.‘가난을 이기는 길은 오직 운동밖에 없다.’파트너없이 외롭게 훈련해야 하는 시골이어서 김은 산과 계곡을 뛰어오르며 남몰래 땀과 눈물을 흘렸다.

96년 상비군에 발탁되면서 기량도 날로 늘어만 갔다.그러나 시련은 이들의 의지를 실험하듯 끊이지 않았다.3년전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졌고,IMF로 레슬링부가 해체위기에 놓이기도 했다.‘운동을 계속해야 하나’ 회의가 밀려왔다.그때마다 이감독은 ‘운명의 만남’을 떠올리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15년 고통의 세월이었읍니다.이제 내년 시드니올림픽의 금메달로 끝장을 내야지요.” 이감독은 눈물을 삼키며 투지를 불태웠다.

한편 장재성(24·주택공사)
은 63㎏급 결승에서 테네프(우크라이나)
에 1-3으로 패배,은메달에 그쳤다.

이순남기자 <sn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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