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는 ‘중국 견제-유럽 진출’ 교두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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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호 27면

2002년 한·일 월드컵 3, 4위전에서 한국과 맞붙은 상대는 터키였다. 비록 승부에서는 우리가 2대3으로 패했지만 이 경기는 외신들로부터 ‘가장 아름다운 경기’라는 평가를 받은 명승부였다. 한국에서 ‘잊혀진 나라’ 터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송기홍의 세계 경영

우리가 관심을 가지기 훨씬 전부터 터키는 한국을 피를 나눈 형제의 나라라고 생각하고 교육해 왔다고 한다. 이유인즉 오늘날 터키의 근간을 이루는 튀르크족이 6세기경 몽골 초원지역에서 고구려와 동맹을 맺고 한족을 견제했던 돌궐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터키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만5000여 명의 병력을 파견해 3000여 명의 사상자를 낼 만큼 열심히 싸워 형제국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터키의 경제구조나 주요 산업을 살펴보면 과거 고도성장기의 우리와 놀랄 만큼 닮아 있다. 수출 위주의 경제구조나 재벌 형태의 기업집단이 경제성장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점이 특히 그렇다. 주력 산업도 가전, 자동차, 조선, 건설 등으로 한국과 유사하다. 일례로 가전회사인 베스텔(Vestel)은 유럽 최대의 TV제조 업체이며, 백색가전 전문기업인 BEKO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을 통해 매출의 대부분을 유럽 수출에서 일으키고 있다. 선박 수주량에서 터키는 중국·한국·일본에 이어 세계 4위에 올라 있다.

최근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에 한국 붐이 일고 있다. 터키 대기업들이 한국 기업을 자신들의 성장모델로 열심히 벤치마킹하고 있으며, 다양한 한국 제품과 한류 문화 상품이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현대차가 오랜 기간 터키시장을 장악해온 프랑스 르노의 아성을 깨고 판매 1위에 올랐고,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해저터널인 보스포루스 터널 건설에 SK건설이 참여하고 있다. G20 서울 정상회의에 맞춰 타결을 추진했다가 무산된 200억 달러 규모의 터키 원전 건설사업에서는 아직도 한국전력이 가장 유력한 파트너다.

터키는 세계경영 측면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국가다. 유럽과 아시아에 영토가 걸쳐 있는 지정학적 특성과, 산업화와 서구화가 가장 잘돼 있는 이슬람 국가라는 문화적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전자·철강·자동차 등 주요 산업에서 한국의 성공 경험과 터키의 전략적 강점을 결합한 협력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우리로서는 유럽과 중동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훌륭한 전초기지와 동반자를 확보하는 셈이 될 것이다.

그러나 터키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이해와 관심은 오랜 역사적 뿌리와 혈맹관계에도 불구하고 극히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국내 대학의 터키 관련 학과는 한 손으로 꼽을 정도에 불과하고 양국 간 교역규모도 경제규모에 비해 미미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우리에 대한 터키 사람들의 우호 감정이 짝사랑으로 끝나게 하지 않으려면 우리의 노하우를 과감하게 전수하고 인적·물적 교류를 확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반도의 4배에 달하는 넓은 국토에 높은 교육수준과 근로의욕을 갖춘 터키의 노동력을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볼 만하다. 먼 옛날 고구려와 돌궐의 혈맹관계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 유라시아 대륙의 동서 문물교류를 이뤄낸 역사를 21세기 한-터키 동반자 관계를 통해 재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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